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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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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47) 상기(想起)

강정민(변호사·소설가)
강정민(변호사·소설가)
석가모니는 견성(見性)에 의하여, 공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방법에 의하여 진리를 찾아들어갔습니다. 그럼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은 무엇이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지식(知識)은 상기(想起)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상기(想起)의 사전적 의미는 ‘다시 생각나게 하다’입니다.
상기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플라톤의 저서 [메논]과 [파이돈]에 자세하게 피력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탐구와 학습을 통해 망각한 것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학습과 탐구를 통해 망각하고 있는 진리를 기억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상기(想起)입니다.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기하학을 전혀 공부해본 적이 없는 노예 소년을 통해 상기론(想起論)을 증명해 보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을 이용하여 자신이 망각하고 있는 지식들을 상기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질문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진리를 찾아내게 도와줍니다. 이를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또는 대화법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소크라테스의 논증들을 살펴보면 실제 인간의 영혼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을 파고들어갔고, 그 결과 영혼선재론(靈魂先在論)을 주장하게 됩니다. 영혼선재론이란 인간의 육신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영혼이 선재(先在)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파이돈]과 [메논]을 보면 영혼선재론과 상기론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됩니다. 인간의 육신이 만들어질 때 영혼도 비로소 같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육신에 앞서 영혼이 이미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함께 소멸되는 것인가 아니면 비록 육신은 죽을지언정 영혼은 여전히 존속하는 것인가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상기론(想起論)에 의하면 영혼은 육신이 생성되기 전에 존재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린다는 상기론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상기론이 진리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입니다. [메논]과 [파이돈]에 전개되어 있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매우 탄탄하며 설득력이 강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상기론은 연기법(緣起法)에 의하여 문제의 근원을 파헤친 석가모니의 방법론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육조단경에서 혜능 대사는 “보리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이 본래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여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스승들이 추구한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하늘의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공자는 천지만물에 아로새겨져 있는 하늘의 지혜를, 석가모니는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는 하늘의 지혜를 궁구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상기론(想起論)은 위 두 가지 방법론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석가모니의 주장은 인간 본성 자체에 진리가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인간의 영혼이 이미 모든 것을 알되 이를 망각하고 있고 인간은 상기에 의하여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으로 거의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석가모니의 주장대로 인간 본성에 진리가 아로새겨져 있다고 한다면 영혼선재론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즉 석가모니의 방법론인 견성에는 영혼선재론이 전제될 필요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인간 본성에 새겨진 진리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상기(想起)로 오해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 본성에 아로새겨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얼마든지 상기(想起)로 오인(誤認)될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영혼선재론과 상기론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간 본성에 진리가 새겨져 있다는 석가모니의 주장과 영혼선재와 상기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해 보이십니까? 강정민(변호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