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상은 전형적인 신기능주의적 발상이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를 유럽연합(EU)의 경험에서부터 찾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1951년 출범시킨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그것이다.
경제는 분명한 평화의 추진동력이다. 그러나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현실을 왜곡한 것이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가입국 간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헤서 만든 기구가 아니었다. 석탄과 철강이라는 것은 전쟁 물자다. 따라서 이 '전쟁물자를 공동으로 관리'함으로써 다시는 어느 일국에 의한 전쟁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경제가 유럽 통합의 키워드로 나오는 것은 정작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출범한 1957년이었다. '경제가 통합을 보다 촉진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전제는 옳았다. 결국 1993년 지금의 유럽연합이 출범하고, 물론 많이 수정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지만 한때는 '유럽 헌법' '단일 대통령과 외교장관'까지 뽑는 원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이를 우리 상황에 적용시켜 보자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비핵화 과정, 그리고 유럽경제공동체가 경제 협력 단계가 되어야 한다. 즉, 비핵화 없이 경협도 없다는 것이고 문대통령의 모든 수사는 ‘비핵화’를 기본적 조건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성급한 경제적 환상보다는 북한은 물론 미국이 보다 확실한 상호 간의 신뢰로 이를 먼저 풀어내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경제적 협력의 단계가 되면 모든 과정은 급물살을 탈 것이고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통일은 대박'과 같은 파격적인 수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는 그간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구상, 시베리아 공동 개발 구상 등을 집대성한 잘짜여진 하나의 시나리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전제조건, 또는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경제 협력이 시작된다면 무엇보다도 북한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제1단계일 것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지금 북한의 기차 평균 시속은 30km이다.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와 같은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바로 북한의 인프라가 먼저 갖춰져야만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유엔과 미국의 제재에 대한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무엇 하나 수월한 일이 없겠지만 결국 9월의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에서 또 한고비를 넘길 것이고, 바로 이때를 즈음하여 결국 '경제'라는 키워드가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임성훈 기자 shyim9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