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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끝이 아닌 시작… "100번 두드리니 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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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끝이 아닌 시작… "100번 두드리니 열리더라"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농성해제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농성해제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오소영 기자] 처음엔 작은 조각상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채 공허한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옛된 소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황유미씨를 형상화한 조각상이었다. 소녀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거리농성장 옆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485일이 지나자 소녀 옆으로 더 큰 조각상이 들어왔다. 덩치가 더 커진 소녀는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등지고 우뚝 섰다. 흰 방진복을 입고 팔짱을 낀 채 위용을 뽐냈다.
작은 소녀상에서 큰 조각상이 들어서기까지. 1023일간 자리를 지켰던 두 조각상은 25일 이전을 준비했다. 고층빌딩 숲 사이로 홀로 자리하던 천막 농성장은 사라졌다.

25일 오후 7시. 한여름 햇빛이 쏟아지던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농성장이 있던 자리엔 반올림 피해자와 가족 등 150여 명이 옹기종기 앉았다. 천막농성 마무리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반올림은 전날 삼성전자와 중재안에 합의함에 따라 1023일간 이어오던 천막 농성의 마침표를 찍었다.

문화제는 7시 10분부터 시작됐다. ‘삼성 직업병 해결하라’ ‘이재용을 처벌하라’ 평소 피켓을 들었던 손으로 옆 사람의 손을 맞잡았다. 이들은 ‘참 감사해유(you~) 꼭 승리해유(you~)’를 외치며 문화제의 막이 올랐다.

이날 공유정옥 반올림 간사가 무대에 올라 지난날을 회고했다. 공유정옥 간사는 “삼성과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이번에도 안 될 것 같네요’라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백 번이 조금 안 되는 거 같다. 그 두드림이 쌓여서 결국 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유정옥 간사는 조정위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만할래가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풀면 좋겠냐고 물어보신 분들이다”라며 “조정위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힘들 때마다 손을 잡아준 건 반올림 지킴이 동지들이었다”고 고마움을 전하며 “하루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왜 그동안 외면했는지 분노스럽지만 앞으로 약속을 잘 지켜 원만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가족들도 나와 발언을 이어갔다.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는 “멋지다. 우리가 성공한 거 같다”며 “그동안 연대를 잘해줘서 고맙다”고 짧은 소감을 남겼다.

한씨의 모친 김시녀씨는 “마침내 농성장을 접게 됐다. 모두 여러분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며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라고 울먹였다.

반올림은 이날 최종 보상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활동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며 문화제를 마무리했다.

반올림은 “황상기 어르신은 늘 ‘우리 유미’의 이야기로 말을 시작한다. 유미의 이야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반올림은 잠시 쉼표를 찍고 또 다른 싸움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