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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경험이 과오로 변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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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경험이 과오로 변하는 순간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팀장: 혼냈으니 술 사주며 풀어줘야지. 팀원: 혼났으니 제발 풀어주세요.

어느 선배의 페북에서 본 글이다. 씁쓸한가?
실무 지식과 인문적 소양을 갖춘 당신에게 팀원들이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면 일단 ‘지식의 저주’를 돌아보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카림 라카니(Karim R. Lakhani)는 전문성이 떨어질수록 창의성이 올라간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2000년에 설립한 이노센티브社는 과제를 내고 보상을 걸어 문제를 해결하게 했는데 우수 아이디어의 40%가 관련 분야의 학위가 없는 사람들이였다는 것이다. 또 심리학자 칼 던커(Kart Duncker)도 전문 지식을 조합할 수 있는 유연성과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취월장>이란 책 속의 내용이다. 지식 그 자체는 고여 있는 물이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한다. 게다가 디지털의 가속화가 만드는 세상이라니. 혁신기업 IDEO의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고 사무실 지하의 공장으로 내려간다. 드릴로 깎아 시제품을 완성해서 직접 사용한다. 불편하다면 곧바로 수정하거나 폐기된다. 혁신은 관념이 아닌 몸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경험은 고여 있는 물을 생수로 바꿔주는 생각의 정수기
책을 덮고 현장으로 가라. 경험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수받고 직접 체험하라. 경험은 고여 있는 물을 생수로 바꿔주는 생각의 정수기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에도 함정은 있다. 산전수전공중전은 고참들의 자랑스런 훈장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든 어디서든 통용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사를 휘황찬란하게 부풀려 성공의 공식으로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자들이다. 제동장치가 없다면 아집에 빠져 답습과 단절이라는 중병으로 조직을 몰고 간다. 경험이 새로운 생각을 가리는 계륵이 되는 순간이다. 당신의 경험을 값진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7월 16일 7시, 자하문에 있는 철학아카데미 1강의실엔 24명의 수강생들로 가득찼다. 노영덕 철학 강사의 강의는 9시2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삶의 고통을 인정하고 사랑하자는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듣는 사람들은 머리가 희끗한 노년들이였다. 그들은 낮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돌아가는 두 대의 선풍기에 의지해 꼼짝 않고 정면을 주시했다. 폭염이 늘어진 오후에 니체의 생의 철학을 늙어감에 대한 위안거리로 삼은걸까? 그건 아니다. 전 주 강의는 헤겔의 관념론이였고 모집 타이틀이 미학개론이었으니까. 수강생들은 자신의 생각에 니체의 생각을 보태어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마케팅과 디지털이라는 실용적 세계를 잠시 접어두고 내가 살아온 세상에 존재하는 묵중한 개념 덩어리들을 다시 살펴 뭔가 연결고리를 찾고 싶었으니.

◇보편성보다 특수성 가치가 더 중요…생각의 빈 곳을 마저 채워라

보편성보다 특수성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시대다. 엉뚱하고 생뚱맞은 생각이 존중받아야 한다. 경험에서 우러난 연륜을 무시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의 빈 곳을 마저 채워라. 과거의 경험에 새로운 생각을 더하라는 이야기다. 고(故)신영복 선생도 인생을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했다. 늙은 생각의 매운 맛은 그렇게 보여줘야 한다.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