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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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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 미중 무역전쟁 확전  1929년 대공황의 교훈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 미중 무역전쟁 확전 1929년 대공황의 교훈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미국이 두번째 관세폭탄을 터뜨리고 중국에 이에 맞대응하면서 또 한번의 보복을 하면서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가 혼란에 빠졌다.

이런 식으로 보복에 보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경우 1929년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야기될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1929년 대공황을 경제학사에서는 흔히 Great Depression이라고 부른다. 1929년 10월 24일 미국 뉴욕주식거래소의 다우지수가 전일대비 11%나 떨어졌다. 주가가 떨어지자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주식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다우지수가 하락하자 기업들이 무너졌고 그로인해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대공황이 발생한 요인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계속된 과잉 생산과 실업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늘어만 가는 생산을 소비가 따라잡지 못해 공장 창고에는 팔지 못한 물건이 급격히 쌓여갔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가난해 물건을 살 여력이 없었다. 재고가 쌓이자 기업에서는 노동자를 해고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관세폭탄이 나왔다. 다우지수가 떨어지자 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고나세를 올리면 사람들이 미국산 물건을 쓸 테니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이었던 윌리스 홀리와 상원 세입위원장이었던 리드 스무트가 공동으로 법안을 제출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스무트 홀리법'이다. 외국 수입품에 관세율을 최고 59%까지 매기는 것이다.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 관세폭탄은 '스무트 홀리법'을 너무도 닮아 있다.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 미중 무역전쟁 확전  1929년 대공황의 교훈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 미중 무역전쟁 확전 1929년 대공황의 교훈

1930년 5월 '스무트 홀리법'이 통과되자 많은 사람은 부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반짝 효과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은 잠시 , 얼마 지나지 않아 절망으로 바뀌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미국'스무트 홀리법'에 대한 '보복' 관세 법안을 잇달아 제정했다. 영국은 일반 관세법을 만들어 모든 수입품에 대해 32% 관세를 매겼고, 프랑스·독일·캐나다도 미국에 '보복 관세'를 매겼다. 전 세계에 '무역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무역전쟁의 결과는 모든 국가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 미국의 많은 수출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해 공장 문을 닫아야만 했다. 유럽도 미국으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공장들이 도산했다. 그 바람에 미국의 실업률은 1933년에는 25%까지 치솟았다.

스무트 홀리법은 이처럼 당초 취지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금방 해결될 것 같던 경기 불황은 장기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이 법안을 도입한 스무트와 홀리 두 의원은 1932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치권에서 사라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누구에게도 도움 안 되는 무역 전쟁'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은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또 미중 무역전쟁 확전으로 보복 관세의 악순환이 이어져 세계 전체 무역은 위축되고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더 가난해질 것이다고 경고했다.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 미중 무역전쟁 확전  1929년 대공황의 교훈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최악의 위기. 노벨경제학상 크루그먼 교수의 경고 … 미중 무역전쟁 확전 1929년 대공황의 교훈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발상의 출발점부터 잘못돼 있었다. 공화당이 이 법안의 도입을 이끌었던 이유는 주요 지지층인 농부들의 표심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관세 장벽을 높이면 높일수록 자국 농업시장이 탄탄해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은 계산은 빗나갔다. 미 농업 수익의 대부분이 수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면화의 절반과 담배의 30%가 나라 밖으로 팔려나갔다. 이들 농작물의 가격 역시 미 내수시장이 아닌 해외 선물시장에서 결정됐다.

당시 미국 경제학자 1028명은 타국의 보복관세를 우려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다. 후버 대통령은 경제학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준 가장 뼈아픈 교훈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반발을 사는 보호무역론은 역효과를 부를 뿐이라는 것이었다.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