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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진 ‘킹메이커’] 현대사를 풍미한 김종필, 다시 보는 ‘DJ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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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진 ‘킹메이커’] 현대사를 풍미한 김종필, 다시 보는 ‘DJP 연합’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제 13대 대통령 후보 포스터.이미지 확대보기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제 13대 대통령 후보 포스터.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끈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정권을 잡은 후 중앙정보부를 창설, 초대 부장을 역임한 뒤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불거진 ‘4대 의혹사건’과 1964년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 1968년 3선개헌 추진세력과의 갈등으로 권력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김 전 총리의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중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기억되는 정치 이슈는 ‘DJP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했다. 이후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의 꿈인 내각제를 고리로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다. 여기서 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선거 막바지에 성사시킨다.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첫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그가 가히 현대사를 풍미했다는 평가는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 전 총리의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빈소는 서울 현대 아산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