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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월드컵의 전사들에게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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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월드컵의 전사들에게 바라는 것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내기를 해 본 사람은 안다. 돈 걸린 승부가 얼마나 사람을 뒤집어 놓는지. 도박의 무서움은 그래서 생긴다. 여기에 명예욕까지 겹치면 물불을 못 가리게 된다. 승부에 집착하다 인간의 선함을 잃는 경우는 스포츠 세계에서 자주 목격된다.

“상대방 공격의 맥을 끊어 놓는 아주 좋은 파울입니다”라는 월드컵 해설자의 목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페어 플레이를 강조하면서도 결과를 좇아 반칙이 정당화된 건 언제부터일까?
며칠 전 막을 내린 US오픈골프대회의 승자 '아리야 주타누간'은 우리에게 희망의 한 장면을 선사했다. 그날로 돌아가 보자. 주타누간은 아홉 홀을 남기고 7타 차로 한국의 김효주에 앞서 있었다. 우승이 눈 앞에 있었다. 그러나 공은 둥글고 골프공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다. 그녀는 마지막 몇 홀 동안 실수를 연발했고 연장전으로 끌려갔다. 5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 했다. 2013년 LPGA 혼다 타일랜드 대회 마지막 홀, 그녀는 한국의 박인비에 두 타나 앞서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의 벙커샷과 퍼터가 난조에 빠졌고 어이없는 트리플보기를 범했다. 그녀는 우승컵을 내주고 눈물을 삼키고 말았었다. 이번은 그 때보다 더 큰 돈이 걸린 승부였다. 쫒기는 입장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실수가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연장 네 번째 홀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벙커샷을 보여주었고 다른 대회 우승 상금의 몇 배가 되는 상금을 차지했다. 이것이 그 날 벌어진 명승부의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바로 살 떨리는 승부의 순간에 그녀가 보여준 상대에 대한 태도다. 그녀는 그때처럼 입술을 떨거나 초조함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이 보여준 멋진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고 “나이스 펏”이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이어나갔다. 엄청난 상금과 명예를 놓고 싸우는 극도의 긴장감속에서 경쟁자의 멋진 플레이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 사이 종교에 귀의라도 한 걸까?

고백하건데 나는 인생의 승부처마다 얼음 같은 표정으로 상대의 실수를 바라며 나만의 행운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했었다.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광고주의 일감을 따내야 먹고사는 광고대행사는 내가 이기면 상대가 울고 상대가 웃으면 나는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 선배를 밟고 일어서는 후배가 되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선의의 경쟁이란 허울 좋은 가식일 뿐 이기는 자가 강한 자였다.

“광고는 차가운 냉장고가 아니라 따뜻한 오븐에서 흐른다”는 어느 유명 광고인의 계율은 뒷전일 뿐, 서로의 의례적이고 가식적인 교류가 넘치는 술자리가 끝나고 일터로 돌아가면 냉정함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승부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그렇게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숱한 성취와 좌절이 반복됐다. 결국 인생의 승부는 일의 성패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라는 교훈은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아마도 주따누간도 그랬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묵상과 배려의 정신이다. 사색을 통해 획득한 심미적 감수성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 이타심이 없다면 약육강식의 야만성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세계를 키워가지 못할 것이다.
아인쉬타인의 말을 빌려보자. “인간은 타인을 위해 살아간다. 하루에도 백번씩 나는 나의 삶이 살아있는 혹은 죽은 사람의 노고에 의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리고 받는 것만큼 돌려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하는 가를 스스로 일깨운다.”

월드컵의 전사들에게 바란다. 승부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하지만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로 임하라고.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경쟁자의 멋진 플레이에도 박수를 쳐주는 태도를 보여 달라고. 그것이 진정한 승부사가 보여주는 멋진 면모일 것이다.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