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호암리 기호암각화와 고대 수메르문자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15)]

기사입력 : 2018-05-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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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암각화
BC 3000년대말부터 BC 1세기경까지 여러 언어를 기록에 사용했다. 설형문자로 작성된 최초의 문서는 BC 3000~1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칼데아 주민들이 사용하던 수메르어로 씌어졌다.

고대 도시 우루크 유적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상형문자 양식의 설형문자로 작성되었으며 사물은 그림으로, 숫자는 짧은 선이나 원의 반복으로, 고유명사는 수수께끼 풀이원칙, 즉 그림을 그것이 묘사하는 대상물이 아니라 통상적 발음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한 그림의 조합으로 표시했다. BC 2000년대에 그림은 점차 단순한 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끝이 경사진 첨필로 말랑말랑한 점토판에 눌러 썼기 때문에 쐐기 모양[楔形]이 되었다.

이전 시기의 설형문자가 위에서 아래로, 즉 세로 형태로 씌어진 데 비해 이 시기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씌어졌으며, 설형문자 부호는 행 옆에 표시했다. 설형문자 쓰기법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설형문자는 메소포타미아에 침입한 셈족계 아카드인의 언어표기법으로 채택되었다(→ 아카드 문자). 최초의 아카드 설형문자 명문의 연대는 구(舊)아카드기, 즉 초기 아카드기(BC 2450~1850경)이며, 이 시기 동안 아카드의 위대한 지도자 사르곤의 명문이 작성되었다.

설형문자는 아카드어에서 기원한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방언의 기록에 계속 사용되었다. 설형문자는 엘람인·카시트인·페르시아인·미탄니인·후르리인이 차용했다. 후르리인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히타이트인에게 설형문자 체계를 물려주었다. 설형문자는 또 히타이트 지배지역에서 사용하던 언어(루비어·하티어)의 기록에도 사용되었다(히타이트어).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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