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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규격과 기준의 과감한 탈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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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규격과 기준의 과감한 탈피를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식품 제조에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원료들만을 사용하여야 하는가? 메주를 콩으로만 담그지 않고 콩을 주원료로 쌀가루나 밀가루 혹은 귀리나 호밀가루를 첨가한다면 이것은 메주로 인정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메주가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메주로서의 기능을 다 하는 것이라면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메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띨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품질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까지 익숙해져 왔던 맛과 비교했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이것을 메주의 맛이라고 정의를 내렸다면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두부도 마찬가지다. 콩으로만 두부를 담그지 않고 일부 대두박가루를 이용하여 두부를 만들 수도 있다. 두부는 대두박가루를 사용하는 경우 빠르게 산패가 일어날 수도 있어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를 소비자들도 파악할 수가 있다. 콩을 사용해야만 두부나 메주제품으로 인정한다면 새로운 제품개발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규격이나 기준을 넘어서자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하여 고기를 만들고 콩고기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피 냄새가 나는 특성도 가미하여 소비자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신제품 고기(패티)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요네즈나 달걀 등 다양한 제품들이 축산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앞으로 지구상에서 고기로 먹기 위해 가축을 키울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가 있고 가축들의 사료문제 외에도 배설물에서 배출되는 가스로 인한 미세먼지나 온난화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기술들을 다양하게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논쟁은 인류의 식량위기나 환경문제, 나아가 기후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협의회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식품의 규격이나 기준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넓게 보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장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 같고 50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메주 산업이나 두부 산업의 발전도 중요하고 이 산업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제한된 원료만을 사용하여야 한다든가 어떤 원료는 몇 %까지 사용할 수 있다든가 하는 식의 기준이나 규격을 제한하기보다는 그에 따른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고 품질의 차이에 따라 가격도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어떤 원료를 사용하든 간에 기존 제품이 갖고 있는 특성을 능가하고 맛과 품질 면에서도 탁월하면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제품이라면 소비시장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국가 간 신제품 개발 경쟁은 어디까지 진행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무척 빠른 속도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 정부도 이처럼 원료의 함량을 기준이나 규격으로 정하여 관리하는 차원은 넘어서야 할 때가 되었다.

전통방식으로만 꼭 전통식품을 만들어야만 하는가? 전통방식의 김치가 있을 수 있고 이와는 달리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김치도 소개될 수 있는 일이다. 전통방식의 김치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우리가 전통방식만을 주장하고 있는 사이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의 방식을 약간 변형하여 독특한 방식의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제품의 시장은 점차 확대되고 있어 언젠가 김치 종주국의 타이틀도 빼앗길지 모른다. 전통방식의 제조와 전통방식을 벗어난 형태의 유사전통식품의 두 가지 트랙으로 병행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의 전통식품을 지키는 것은 규격과 기준이 아니라 이를 과감히 탈피하는 자세만이 우리 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아울러 우리의 전통식품을 지켜 나가는 길이라고 본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