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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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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대만의 떠오르는 별 홍하이는 궈타이밍이 창업했다.

훙하이 창업주 궈타이밍의 한자 표기는 郭台銘이다. 영어권에서는 ‘테리 궈’로 쓴다.
궈타이밍은 1950년생이다. 올해 69세이다.

궈타이밍 부모는 중국 본토 대륙의 산시성 사람들이다. 한족인 아버지는 일제 시대 경찰간부로 근무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모두 장악할 때 국민당 정권을 따라 타이완으로 망명했다. 만약 그대로 중국 산시성에 남았다면 문화혁명 때 어떤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궈타이밍은 부모의 망명 이듬해 타이완의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을 기준으로 하면 타이완 사람이기는 하지만 본토 산시성에 뿌리는 뚠 외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인 셈이다.

쿼타이밍은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초·중·고를 이수한 후 해운회사 실무자를 양성하는 타이완의 중국 해사전과학교를 다녔다.
오늘날에는 그 이름이 타이완해양기술학원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해양대학교 비슷한 곳이다.

1971년 당시 잘 나가던 해운회사인 타이완 부흥항운공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무역 실무를 담당했다. 수출입 업무를 하면서 바다 건너 해외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플라스틱 제조 하도급 업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미국에 TV 플라스틱 리모콘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궈타이밍은 자신이 국제무대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직접 플라스틱 회사를 차려 모니터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때 궈타이밍이 국제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흑백TV용 모니터 하도급사가 홍하이 플라스틱이다. 창업 연도는 1974년이다. 창업에 들어간 납입자본금 7400달러는 어머니로부터 받아 충당했다. 이 회사가 바로 오늘날 타이완의 꿈인 홍하이 그룹의 모태다.

홍하이 플라스틱이 출범할 즈음 오일쇼크가 터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줄이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한 것이다. 그 바람에 플라스틱 제조원가가 폭등했다. 홍하이 플라스틱으로서는 원가 상승의 쇼크를 감내하기 어려웠다. 궈타이밍은 지금도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한파의 시기라고 말한다.

은행 융자로 근근이 버티어 가던 중 1980년 기회가 왔다.

홍하이 플라스틱이 유가파동 속에서도 원청회사와의 납품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사실이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고 있던 미국 아타리(Atari)사가 접근해 온 것이다. 아타리는 당시 세계 최대의 게임기 제조회사였다.

그 회사가 흥하이에 콘솔용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해오면서 훙하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궈타이밍은 아타리 납품을 계기로 TV 모니터는 그만두고 게임기와 PC용 부품회사로 변신했다.

회사 이름도 홍하이정밀공업으로 바꾸었다. 제품 브랜드는 글로벌 무대에서 널리 통용될 수 있도록 영어 폭스콘(Foxconn)이라고 명명했다.

이 폭스콘은 훗날 홍하이정밀 공업의 영어 회사명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궈타이밍은 그해 미국 대륙 대장정에 나섰다. 11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면서 컴퓨터와 게임기 회사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방문했다.

물론 시장조사는 사전에 완벽하게 했다. 미국 기업인들을 만나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품들을 정확하게 찍어내 더 싼 가격으로 양질의 부품을 공급하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아타리 납품사라는 사실도 강력하게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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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궈타이밍의 이 무모한 시도는 큰 성과를 냈다. 수많은 미국 기업들로 엄청난 물량의 주문을 받아냈다.

그 당시 미국의 PC와 게임기 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가 무척 빨랐다. 생존 경쟁도 심했다. 그런 만큼 질 좋고 싼 부품을 확보하는 것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대한 변수였다.

궈타이밍은 그러한 재계의 사정을 정확하게 꿰뚫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당시 궈타이밍이 대장정을 돌며 미국 기업들로부터 따온 주문은 홍하이 그룹이 오늘날 세계 재벌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

궈타이밍의 첫 부인은 동갑나기인 린슈루(林淑如) 여사다. 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1976년생인 아들은 지금 영화회사 오너다. 1978년생 딸은 금융인이다. 첫부인 린 여사는 2005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첫 부인이 사망한 후 궈타이밍의 여자 관계는 매우 복잡했다. 숱한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러다가 2008년 24세 연하인 발레리나와 결혼했다.

그가 지금의 부인인 증신잉(曾馨瑩) 여사다.

증 여사와의 슬하에 2009년생 아들과 2010년생 딸이 있다. 2016년에 또 한 명의 딸을 출산했다.

궈타이밍의 경영 철학은 고객 제일주의다. 삼성이 인재 제일주의인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인재는 네 번째, 관리는 세 번째, 설비는 두 번째, 그리고 고객은 첫 번째로 중요하다는 것이 홍하이 그룹의 기업 이념이다.

고객을 최고로 받들어 모시는 이 같은 기업 이념은 홍하이가 원청 고객의 주문을 받으면서 세계 최고의 하도급사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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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폭스콘(Foxconn)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인, 24세 연하 발레리나와 결혼.


台銘籍貫山西,父親郭齡瑞長年服務於警界 ,郭台銘是外省第二代,為家中的長子。求學期間,曾在橡膠廠、砂輪廠和藥廠打工,退伍後在復興航運公司上班。1974年,郭台銘獲得母親以標會取得的二十萬元新台幣資助,其中十萬元用於結婚,十萬元與十名員工成立「鴻海塑膠企業有限公司」,從黑白電視機旋鈕製造起家。1981年,鴻海成功開發連接器產品,轉型生產個人電腦「連接器」(connector)。1982年改名「鴻海精密工業有限公司」,資本額新台幣1600萬元。

1985年成立美國分公司,此後更在中國大陸、香港、歐洲、日本、印度、南美洲等地區設置據點,2001年,鴻海的營業額,超越科技業霸主台積電,成為臺灣第一大民營企業;2005年更超越國營公司中油,成為臺灣最大企業[3],並持續迄今。

2009年,鴻海集團旗下的群創光電合併奇美電子。[4]2016年鴻海精密工業收購日本夏普(Sharp),並持有其股份66%,成為最大股東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