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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 퀄컴 인수 트럼프에 의해 '물거품'... 美 재무부 "국가 안보의 위협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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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 퀄컴 인수 트럼프에 의해 '물거품'... 美 재무부 "국가 안보의 위협에 해당"

브로드컴, 4월 3일까지 미국으로 본사 이전…트럼프도 반겨

트럼프 행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저지한 실질적 이유는 중국과의 통신 규격의 패권 다툼에서 불리하게 될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행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저지한 실질적 이유는 중국과의 통신 규격의 패권 다툼에서 불리하게 될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이코노믹 김길수 기자] 반도체 메이커 브로드컴(Broadcom)이 1000억달러(약 11조원) 이상으로 퀄컴(Qualcomm) 인수를 시도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행한 '단호한 인수 저지'라는 대통령령에 의해 인수가 물건너갔다. 퀄컴 인수 소동의 발단과 그 내면에 어떠한 이익과 실리가 배경이 되었는지 글로벌이코노믹이 추적해본다. <편집자 주>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에 대해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싱가포르에 본거지를 둔 브로드컴이 미국 기업 퀄컴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미국 국가 안보의 위협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재무부에 인수 저지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인수 저지를 분명히 하자 2018년 3월 14일(현지 시간) 브로드컴은 인수 포기를 발표했다.
그러나 외국 기업에 의한 미국 기업의 인수가 국가 안보의 위협이라는 이유는 결정적인 인수 규제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2015년 브로드컴은 '아바고 테크놀로지(Avago Technologies)'에 의해 인수된 시점에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겼지만 그 근본은 미국 기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8년 4월 3일까지 브로드컴은 미국으로 본사를 옮길 예정이다.

브로드컴의 미국 복귀 소식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환영을 표시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브로드컴 미국 컴백 발표 동영상'을 손쉽게 시청할 수 있다. 이는 퀄컴 인수가 중대한 국가 안보 위협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유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이유가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퀄컴은 2015년 이후 중국과 한국, 대만으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수십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그로 인해 특허 사용료를 대폭 낮출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경영 상황은 2014년 이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2015년에는 퀄컴 주식을 대량 보유한 뉴욕의 행동주의 펀드 '자나 파트너스(Jana Partners)'에서 반도체 제조 부문과 라이선스 부문을 분리하여 반도체 제조 부문을 분사하거나 매각해야 한다고 지적해 퀄컴은 큰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퀄컴의 인수 전략으로 브로드컴은 인수 비용인 1170억달러(약 125조원) 중 1060억달러(약 113조원)를 차입으로 충당할 예정이었다. 2014년과 2015년의 보고서 때와 비교하면 경영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퀄컴을 손에 넣기로 결심한 브로드컴으로서는 "퀄컴의 현금 흐름을 이용하면서도 부채 상환을 위한 단기 수익성을 중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술 매체 스트레테쳐리(Stratechery)를 운영하는 벤 톰슨은 "퀄컴이 '반도체 칩 제조 판매'와 '특허 라이선스 비즈니스'라는 수익의 양대 산맥을 안고 있으며 양대 산맥에 따른 수익 구조는 여전히 매우 양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미국 정부의 차세대 고속통신 '5G'의 표준화 경쟁에 대한 주도권 쟁탈 전략과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전략이 서로 상반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립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CFIUS의 권고문에 있듯이 차세대 5G의 표준화 경쟁은 '화웨이(Huawei)' 등을 보유한 중국 세력과의 치열한 다툼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이는 향후 한 단계 더 발전할 6G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되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게 되면 단기적인 수익성을 앞세워 차세대 통신 규격의 개발 경쟁에서 퀄컴이 완수해야 할 장기적인 연구 개발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곧 무선통신 규격에서 중국의 지배를 허용하게 된다.

5G 경쟁에서 결코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 없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미국의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독점금지법을 이유로 들어 인수를 저지하는 다른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량의 폭은 훨씬 좁고, 민간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현재까지 표면상으로 브로드컴이 외국 기업으로 보였다는 것이 CFIUS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큰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전 세계인이 브로드컴이 완전한 미국 기업이라고 여기고 있었다면, 이번과 같이 '국가 안보상의 이유'라는 카드는 꺼내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겉으로는 싱가포르 기업이라는 이유로 국가 안보를 위해 브로드컴의 인수를 제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중국과 통신 규격의 패권 다툼에서 불리하게 될 것을 피하고 싶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저지한 실질적 이유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