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의 등장으로 패혈증과 파상풍 등 인간의 생명을 앗아갔던 무서운 전염병이 극복되면서 현대 의학은 극적으로 발전해 왔다. 항생제는 다양한 감염증에 효과를 보이면서 '기적의 약'으로 불렸다.
박테리오파지의 '숙주'는 세균뿐이다. 오직 세균만을 공격하고 다른 세포 등에는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하다. 과거 소련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박테리오파지 연구가 활발했지만 특정 세균밖에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연구는 시들해졌다.
하지만 최근 박테리오파지가 항생제를 대신할 최고의 의료 혁신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박테리오파지는 DNA를 포함한 '머리'와 세균을 잡는 '다리'로 구성돼 구조가 단순하다. 이러한 단순한 구조적 특징을 이용한 임상 실험에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옥스퍼드아카데믹(OXFORD Academic)과 라이브사이언스(Live Science) 지에 실리면서 전 세계 의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과학지에 보고된 사례를 보면 미국 코네티컷 주의 80세 한 남성은 심장 수술 시 이용한 인공 혈관에서 '녹농균'이라는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장기 치료를 받아오던 중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어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했다. 담당 의사는 박테리오파지를 연구하고 있는 예일 대학 연구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연구팀의 일원인 벤자민 장 박사는 뉴욕 닷지연못(Dodge Pond)에서 채취한 'OMKO1'로 명명된 박테리오파지가 남성의 감염된 세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놀랍게도 OMKO1의 공격을 받은 세균은 OMKO1에 대한 내성을 얻기 위해 구조를 변화시켰고, 변화된 세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듣지 않았던 항생제가 효과를 발휘했다. 즉 박테리오파지와 항생제의 이단 공격으로 내성균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장 박사 연구팀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미국 식품의약청(FDA)에 'OMKO1 투여 시험' 허가를 얻어 2016년 1월 수십만개의 OMKO1 박테리오파지를 남성의 가슴에 주입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그리고 수술 후 극히 짧은 시간에 세균 감염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항생제를 계속 사용하여 18개월이 지났지만 감염은 재발하지 않았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