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지역연구]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 방한, UAE 어떤 나라…원전수주 ·군사협력, 임종석 특사 방문의 진실

공유
1

[지역연구]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 방한, UAE 어떤 나라…원전수주 ·군사협력, 임종석 특사 방문의 진실

UAE 수도 아부다비 전경.
UAE 수도 아부다비 전경.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8일 한국에 왔다.

칼둔 아부다비 청장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UAE를 방문해 모하멧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를 예방했을 때 현장에서 배석한 인물이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임종석 실장의 특사파견 배경을 둘러싸고 설전이 벌어져왔다. 이번 칼둔 행정청장의 방한을 계기로 진상이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청와대는 UAE 칼둔 행정청장이 한국에 오면 그간 제기된 의혹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의 탈 원전 정책으로 UAE와의 관계가 나빠져 이를 무마하려고 했다는 의혹에서 부터 파병 중인 아크 부대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이명박 정부 당시 체결한 군사 협력 양해각서(MOU)를 수정하려다가 UAE가 불만을 제기해 임 실장을 급히 UAE로 파견한 것이 아니냐하는 여러 가지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제기돼 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아랍 에미리트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아랍에미리트는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합 국가이다. 아부다비 토후국, 아지만 토후국, 두바이 토후국, 푸자이라 토후국, 라스알카이마 토후국, 샤르자 토후국 그리고 움알쿠와인 토후국 등이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멤버이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칼둔 행정정창은 7개 토후국 중 영향력이 기장 높은 아부다비 토후국 출신이다.

이 7개의 토후국들은 모두 왕이 통치하고 있다. 왕권국가로 볼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 중앙정부는 7개국 토후국 수장으로 구성된 연방최고회의에서 선출된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려지고 있다. 통상 관례상 수도인 아부다비 국왕이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왔다. 최대도시 두바이를 끼고 있는 두바이 토후국의 국왕은 부통령을 맡아왔다. 7개 각 토후국들은 아랍에미리트 연방정부에 장관을 추천할 수 있다.

이른바 UAE로 불리는 아랍에미리트 중앙정부는 치안과 재정 통화 우편 그리고 국방 등을 맡는다. 이러한 아랍에미리트 체제는 1971년 출범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국교로 되어있다.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힌두교와 기독교 신도들도 눈에 띈다. 이슬람이 국교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교회의 설립도 허용되어있다. 기독교 인구비율이 전제인구의 1할 내외이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풍족한 나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를 웃돌고 있다. 3만 달러에 조금 못치는 우리나라보다 두 배이상 더 많다. 원유수출로 벌어들이는 오일 머니가 국가경제의 핵심이다. 원유매장량이 세계에서 8번째로 많다.

한국과 UAE는 1980년 6월에 정식으로 수교했다. 아라에미리트 주재 한국대사관은 아부다비에, 총영사관은 두바이에 있다.
UAE 지도 이미지 확대보기
UAE 지도


이명박 정부시절인 2009년 12월 27일 한국은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임종석 실장이 특사자격으로 다녀와 이슈가 됐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유난히 외국인이 많다. 전체인구의 80% 가량이 외국인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이집트, 오만, 이란 등으로부터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지역에서 인간이 살았다는 흔적은 BC 5500년부터이다. 그후 BC 2500년경부터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AD 240년경에 이란의 사산(Sasan) 왕조가 아라비아 동부지역 전체를 점령하였다. 630년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파견한 특사에 의해 이곳에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아라비아 동부 지역 중에서도 특히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예로부터 인도양을 통한 아시아와 유럽 간의 비단 및 향료 중개무역이 발달한 곳이었다.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 탐험에 성공하면서 부터이다. 포르투갈은 이때 걸프지역으로 진출하여 오만의 무스카트(Muscat) 및 소하르(Sohar) 항구, 아랍에미리트의 라스 알-카이마 등 아라비아 반도 동남지역에 위치한 주요 항구들을 점령했다. 그 후 1666년에는 네덜란드 항해사가 아랍에미리트 해안가까지 진출했다. 영국은 1720년에는 이곳에 동인도주식회사가 설립됐다.

1722년 이란의 사파비(Safavid) 왕조가 아프간 족에게 멸망당하고 1724년 오만의 야리바(Yariba) 왕조가 몰락하면서 이 지역에 힘의 공백 상태가 발생했고 그때부터 약 2세기동안 유럽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1818년 영국은 이곳의 푸자이라, 라스 알-카이마, 움 알-카이와인, 아지만, 샤르자, 두바이, 아부다비의 에미리트 통치자들과 ‘영구해상평화조약’을 체결한다. 그리고는 이 지역을 ‘걸프지역 영국보호령연합(The Trucial States)’으로 명명했다. 영국은 대형선박 건조 및 해안선에 요새 신축을 금지하는 한편, 영국의 승인 없이 다른 나라와 독립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규정했다. 영국은 그러나 현지 부족 간의 내부 분쟁에 대해서는 일절 모른 척 했다. 그 바람에 영국지배 속에서 현지 부족들끼리는 계속 내전을 벌였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서구 열강들이 걸프지역에 진출했다. 영국은 걸프지역에서의 독점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1892년 보호령 귀속조치를 단행한다.

2차 대전 후인 1952년 영국 정부의 주도로 7개 부족 통치자로 구성된 ‘걸프지역영국보호령연합위원회’가 발족했다. 영국은 1971년 토후국과의 모든 조약을 종결하고 군대도 철수시켰다.

그해 12월 2일 6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연합’이 창설됐다. 아부다비 에미리트 통치자인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하얀(H.H. 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이 대통령으로 또 두바이 에미리트 통치자인 셰이크 마크툼 빈 라시드 알 마크툼(H.H. Sheikh Maktoum bin Rashid Al Maktoum)을 부통령에 뽑았다. 1972년 2월 10일 아랍에미리트까지 합류하면서 총 7개의 에미리트가 참여하는 오늘날의 연방국으로 발전했다.


김대호 기자 yoonsk82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