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배기 딸아이를 둔 소비자 김모씨(44·여)는 얼마 전 이마트(서울 은평구 수색점)에서 딸아이의 장난감을 구매했다. 장난감치고 고가였지만, 어쩌다 한 번 사주는 것을 감안하면 큰 사치도 아니었다. 장난감을 품에 든 딸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박스를 뜯는 순간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난 후 액정화면에 만화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난감이었지만 먹통 그 자체였다. 김씨는 딸아이가 워낙 기대를 하고 구매한 제품이라 곧바로 왔던 길을 다시 돌렸다. 이마트 고객센터에 장난감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교환하려고 했으나, 김씨를 쳐다보는 직원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순간 김씨는 “거짓말하는 것으로 보이냐"고 역성을 냈다. 그랬더니 이제 그 직원은 김씨를 거들떠보는 척만 했다. 블랙컨슈머가 아니었지만 김씨가 블랙컨슈머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랙컨슈머들의 특징은 일단 화를 먼저 내고, 보상을 원한다. 사실 김씨도 보상을 원했다. 고장난 장난감을 팔지 않았다면 두 번 발걸음을 하지 않았을 생각에 제품을 교환해 줄 것과 위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마트 측은 위자료 치곤 아주 적은 금액(5000원)의 상품권을 제안했다. 김씨는 순간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마트 고객센터 입구에는 “직원에게 욕설을 하면 신고당할 수 있다”는 경고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최근 대형마트·백화점·면세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28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이 고객에게 폭행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폭언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도 각각 12.2%와 6.7%로 나타났다. 성희롱 피해자도 3.6%나 됐다. 이 중에는 블랙컨슈머들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31∼41%인 560만∼740만명이 감정노동자로 추정된다.
조규봉 기자 ckb@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