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 사태는 한마디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쿠데타)을 일으켜 불법으로 군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1979년 10ㆍ26사건을 계기로 하여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한다.
이때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ㆍ26사건 수사에 비협조적이라고 하여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이 반란에 관여한 사람은 9사단장 노태우를 비롯,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 등이다.
한편, 정승화 총장의 신변안전에 책임이 있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참석 중이었다.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강제 연행은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진행되었고, 사후 재가를 받기 위하여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에게 강압적으로 정승화 총장 연행의 재가를 요청하나 거절당한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했다.
신군부 세력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국가의 통치권을 장악한후 개헌을 추진하여 7년 단임의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선출하는 헌법을 공포했다.
이어서 민주정의당을 조직하고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는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12ㆍ12사태 진상은 비밀로 묻힐뻔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김영삼 정부는 사실규명에 적극 나서 사법적 심판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로 규정되고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ㆍ노태우는 결국 구속되고 만다. 그 후 김대중정부는 전두환ㆍ노태우를 특별사면 했다.
김하성 기자 sungh905@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