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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천전리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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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천전리 암각화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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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천전리 암각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2㎞ 떨어진 곳에 천전리 암각화가 있다. 1970년 문명대 동국대 교수가 발견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국보 제147호이다. 두 암각화의 공통점은 역시 성스러운 제단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암각화 주변에 의례를 행할 수 있는 너른 터가 있고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문양에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묘사력이 으뜸이다. 모두 쪼기 기법으로 조각된 바다짐승과 선 쪼기기법으로 조각된 육지동물의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대상물의 특징을 단순화 혹은 강조하거나 과장된 면이 있어 표현주의 양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천전리 암각화는 일부 동물 문양과 신라시대 명문, 선각 그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각이 기하학적 문양이다. 문양은 암면을 상하로 크게 이등분했을 때 주로 상단부에 있다. 종류로는 원문, 동심원문, 소용돌이문, 마름모꼴문, 물결과 직선 등이며 여성의 표식도 새겨져 있다. 이러한 묘사는 개념화된 사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기하학적 미술양식이며, 인간의 사유를 기초화한 문자이자 추상주의 양식의 미술이다.

그렇다면 천전리 암각화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고조선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전후라고 한다면 고조선의 후국에 속한 진한이 한강 이남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진한의 중심세력인 한 부족이 천전리 암각화를 새겼다는 것이다.

특히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을 고조선의 문자로 해석한 점이 주목된다. 기호들이 여러 번 다양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이는 메시지를 전하는 문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로는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인 겹둥근 무늬에 있다. 암각화에는 겹둥근 무늬가 10여 개가 있는데 가장 크고 뚜렷한 태양문이 중심부에 있다.

문명대 교수는 “태양숭배의 중심으로 볼 수 있다”며 “대표적인 태양숭배족인 한 부족이 태양숭배의 제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신라시대 화랑(花郞)들이 이곳에서 심신수련을 했다는 흔적도 있다. 천전리 계곡은 신라 왕족이 즐겨 찾았던 명소였다. 신라 말까지 왕족, 승려, 화랑 등이 암각화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옆에는 화랑들의 군사 연병장이 있다고 한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