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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시작해 의지와 열정으로 춤밭을 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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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시작해 의지와 열정으로 춤밭을 일구다

[무용인 인물탐구(13)] 곽영은 메타댄스프로젝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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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우아한 시체놀이'(2014)
메타댄스를 생각하면 흰수염 고래와 싸움을 벌였던 에이허브 선장이 떠오른다. 포경선의 선장이 될 것인가, 생존자 이슈멜이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 전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거센 바람이 불고 있지만 기로의 작은 영혼은 희망봉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곽영은(郭玲恩)은 올해 미국 디트로이트(안무와 출연, 2인무)와 멕시코 미초아칸(안무와 출연, 군무)에서 공연을 감행했다. 공들인 해외공연은 현지인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늘 새로운 에너지 발전소가 되었다.

곽영은은 아버지 곽영대, 어머니 함수연의 2녀 중 차녀로 1983년 2월 12일에 태어났다. 중2 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계룡시로 전학하면서 영은은 무용을 시작한다. 영은은 어려운 일을 쉽게 생각하며 잘 처리하는 편이다. 건성으로 여러 예체능 학원을 다니던 영은은 동네 예고생 언니의 권유로 학원을 다니면서 현대무용을 시작했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물리치고 진득하게 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부모들을 놀라게 하였다.

초현실주의 기술 차용한 무대 표현


인간의 본성 꿰뚫는 이야기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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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우아한 시체놀이'(2014)

슬픈 음악에 맞추어 플로어에서 구르다가 고개를 돌리며 팔을 드는 동작을 해내던 당시의 모습과 기분은 아직도 그녀 주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순간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던 청소년 시절, 추억 속의 춤은 운명의 필수 코스였던 셈이다. 영은은 학원에서 유현진 선생에게서 춤을 배웠고 대전예고를 거쳐 충남대에 입학한 뒤 최성옥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최 교수에 의하면 영은은 후배들에게는 모범이 되고, 한 번도 ‘아니요’라고 말한 적이 없는 값진 후학이다.

영은의 최고작은 2014년도 젊은 안무가전 ‘크리틱스 초이스’ 선정작 『우아한 시체놀이(Exquisite Corpse)』이다. 영은은 미디어 아트에도 관심이 많다. 『우아한 시체놀이』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사용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자동기술의 한 방법, 있어야 하지 않을 곳에 존재하는 충격을 새로운 작품형식의 움직임으로 만든 작품이다. 인간의 이중성과 사회의 무관심을 비판한 작품의 모티브는 19세기 말 파리 ‘모르그’에 공개된 시체안치소이다.

인간의 죽음이 애도의 대상이 아닌 자극적 구경거리로 변질되고 당시 파리의 관광상품이 된 바 있다. 추악하고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25분의 공연시간 동안 16장면에 16개의 음악이 사용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비상식적 사건들을 대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미디어 매체나 SNS를 통해 비슷한 사건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면 조회수가 높아지는 현상으로 대체된다. 음악도 컷 인, 컷 아웃으로 의도적 변화를 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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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고개숙인 사람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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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고개숙인 사람들'(2015)

『고개숙인 사람들』(2015)에서 배경과 영상을 작품의 한 부분으로 구성, 무대에 CCTV를 설치하고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의미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공공장소에서 익숙하게 보게 되는 고개숙인 사람들. 일렬로 또는 마주보고 앉은 채 고개를 숙이며 앉아있는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기에 너무 의존하며 지배당하고 기계의 그늘아래 고개 숙이며 살고 있다. 기술 발달에 너무 많이 고개 숙이지 말고 사고의 틀에 고개를 숙이기를 바라는 의도로 세태를 고발한 작품이다.

영은이 대전 차세대 아티스트의 선정작 중에는 피아노 연주, 시, 즉흥적 미디어 아트와 협업한 『춤추는 시』(2015)라는 1시간짜리 작품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센서가 영상으로 잡히는 장면이 있다. 손미의 시 ‘체스’, ‘체크 메이트’, ‘게임이 끝나는 시간’, ‘달은 떨어질 자격이 있다’ 네 편에 나타난 대상의 부재와 자아상실을 이미지화한다. 이 작품은 흑백논리에 대한 편견, ‘생과 사’의 사이, 여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통 등을 콜라주 한다.

기존 작품 활용해 새로운 작품 창출


음악과 크로스오버로 감정 이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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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달팽이 뿔'(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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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달팽이 뿔'(2010)

라이브 음악과 춤의 콜라보인 『어느 재즈 바』(2017)는 기존 작품을 연주자들과 상의하여 편곡한 음악과 상황에 맞춘 움직임으로 재창출 해낸다. 안무가에게 도전의식을 갖게 해준 작업은 강렬한 음악에 맞추어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욕망의 몸짓으로 드러난다. 사연을 안고 모이는 재즈바, 인간의 기본 욕구를 각자의 몸짓으로 이야기한다. 안전지대는 사라지고 위험의 신호탄이 쏘아진다.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정신적•육체적 안전욕구가 솟구치고 몸부림친다.

곽영은의 『북어』(2011년)는 최승호의 ‘북어’ 이미지를 가져온다. 대기업 공장의 직원들이 잇달아 자살하거나 젊은 나이에 희귀병을 앓는다는 기사가 오버랩 된다. 동료가 죽었는데도 눈치보며 조문하는 모습과 목소리, 웅얼거리기만 하는 그들은 말라 굳어버린 북어들과 다를 바 없다. 젊은 세대들은 극심한 경쟁 속에서 꿈, 이상, 희망, 사랑, 순수함 등을 잃어버린 채 잔인한 경쟁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이 작품은 안타까운 ‘88세대’를 모티브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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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북어'(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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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은 안무의 '북어'(2011)

무용단 회장으로서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는 영은은 최근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통쾌함을 느끼며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즐긴다. 다수의 안무작과 출연작을 통해 성장한 영은이 민간무용단체를 이끌면서 많은 난관에도 와해되지 않고 지금의 팀원과 팀워크가 유지되어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전 지역에 현대무용이 만개하여 지금까지의 여러 활동들이 국내외적으로 더욱 인정받고 장도에 영광있기를 기대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