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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을 '예(藝)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검무에 홀린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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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을 '예(藝)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검무에 홀린 안무가

[미래의 한류스타(30)] 윤자경 검무 창작소 대표

윤자경의 '평화를 위한 비상의 몸짓'.이미지 확대보기
윤자경의 '평화를 위한 비상의 몸짓'.
검은 잠들지 않는다. 다만 누워있을 뿐이다. 검사(劍師)의 맵시는 부드러운 풀잎을 타고 있다. 도봉산(道峯山)의 기가 조용히 북부 서울로 내려온다. 원통사의 예불은 이슬 같은 묵언정진이다. 새들은 둥지에서 잠들어 있고, 여름 바람이 가을 분위기를 타고 내려온다. 운명이 점지한 큰 봉우리 중의 하나, 여검객 윤자경은 온전히 시공에 걸린 자신의 삶을 검에 봉헌한다.

자경의 열일곱, 오후 수업이 끝나고 검도관 가는 발길은 늘 즐거웠다. 체력이 제법 올라 땀도 흘리고 집중도 제법이다. 새벽 수련이 있었지만 내가신장 수련을 하며 뻐근한 몸을 달랜다. 굳은 살 박힌 손으로 목검을 들고 공간 이동을 하면서 점점 자유로워져지는 영혼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시간은 멈추고 자신만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국해동검도서 검술 기초 익혀


다양한 무용 배워 춤으로 연결


해외공연단서 뛰어난 활약 보여


윤자경(尹姿京, Yoon Ja Kyung)은 부친 윤영호, 모친 문영진의 두 자녀 중 장녀로 1977년 1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강서초등, 선덕중, 정의여고를 마치고 담임 선생님이 추천한 대학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서울예대에 다시 입학하였으나 외부활동이 너무 많아 휴학을 하면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검도6단인 그녀는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늦깎이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윤자경의 '비연의 혼'이미지 확대보기
윤자경의 '비연의 혼'

자경은 전 한국해동검도 연맹 김윤재 이사로부터 검술의 기초를 배워 입단했고 지도자 과정을 마쳤다. 현 한국해동검도 협회 고문 김희권 대사부로부터 진검술을 사사했다. 검을 춤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김현아•안재은 선생으로부터 현대무용과 발레를, 김영덕 선생에게서 한국무용을 배웠다. 요즈음 그녀는 방유선 선생으로부터 움직임(스포츠의학)을 배우고 있다.

한국해동중앙시범단 해외공연팀 수석 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검무 안무가다. 도장은 그녀의 삶의 여정이고 기도도량이다. 유난히 햇살이 따사로웠던 고2의 봄날, 검도관 마룻바닥에 누워 햇살샤워를 하는 가운데 검신과 눈이 마주친다. 자경은 검신의 금빛 눈동자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안개가 가득한 깊은 호수, 그곳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검도관에 가면 시간과 생각이 멈춰버리고 오직 검과 자신만이 존재한다. 검과 호흡을 맞추며 수련하다보면 점점 빠르게 움직여지는 몸과 섬광 같은 검선(劍線)에 매료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 땀에 젖은 몸을 누이고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들으면 공중부양 같은 행복이 꽉 차 오른다. 햇살이 가득 피면 그랜드 캐니언•고비사막•우주에 가서 달을 베는 상상도 일어난다.
상상의 나래, 아득한 절벽을 지나 구름 건너 별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미풍(微風)에 맞춰 검을 들고 춤을 춘다. 지워지지 않는 검신과의 만남, 검무 인상은 점점 그녀를 옥죄어 왔다. 걸어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자기 전에는 더 또렷해지고 꿈속에서도 만나는 검신은 아침을 일깨웠다. 자경이 하루 종일 검 생각만 하고, 검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윤자경의 '월인-댄스포럼'이미지 확대보기
윤자경의 '월인-댄스포럼'

중3부터 빠져든 검도는 고3 성적을 바닥으로 내려놓았고 감정은 극심한 가뭄 상태였다. 대학을 한 학기 다니다가 검도관으로 복귀한 자경은 대한도법협회의 검무 시연을 보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사범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운동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해외 시범단에 발탁되어 미국에서 검무 시연을 쌓아왔지만 그럴수록 무(舞)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다.

대학무용제에 검무 활동 확장


TV드라마서 왕성한 활동도


후배에게 도움 주는 지도자가 꿈

새벽부터 자정까지 학원과 검도관을 돌며 배움을 채워 나갔지만 커져만 가는 갈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용과 교수들은 대학 입학을 권유했다. 2003년 미국 공연을 통해 인연을 맺은 박숙자 교수의 도움으로 서울예대에 입학한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던 중 방송 일정과 세계대회 입상으로 인한 외국 초청공연 등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시범단, 한국에서 수용이 불가능한 창작 검무를 미국에서 선보이는 기회였다. 미국 투어 중 박순기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30여 명의 민간인들이 3개월 내에 검무 공연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를 따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공연은 많은 작업을 불러왔고, 2002년 시범대회, 2004년 WCO(세계문화오픈) 전통무예부문 세계대회에서 2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윤자경의 '제국의 아침'이미지 확대보기
윤자경의 '제국의 아침'

국가원수 앞에서 춤추는 광복 60주년 경축식 공연의 메인무대에 초청받은 자경은 검무가 ‘위험하고 살벌한 춤’이라는 인식을 털어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섬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상과 자개와 어린 타조 가슴 털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검을 만들었다. 무도인의 ‘충(忠)’의 정신을 담아 열 자루의 검고(푸른빛의 천연염색) 아름다운 실크를 단 검의 물결을 만들었다. 새가 날아올라 하늘을 찌를 듯한 ‘평화를 위한 비상의 몸짓’(2005)은 깃발의 움직임이 돋보였고, 근육을 틀었다 풀어내고 기를 단전으로 모아 한 호흡으로 도약하는 쌍검법을 사용했다.

자경은 대학무용제에 ‘和’(세종대 창작검무, 2000)로 객원 출연하는 등 검무 활동을 확장시켜 갔다. 국내에서도 각종 대회 및 축제에 검무 공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면서 방송활동도 활발해 졌고, ‘무인시대’의 여자 무사, MBC 예능, SBS 드라마 ‘연개소문’까지 치고 올라가자 공연 활동도 더욱 왕성해졌다. 자경은 방송•공연에서 상종가를 치던 때인 제45회 대종상 개막식공연 생방송을 끝내고 협회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졌다.

윤자경의 '검녀'이미지 확대보기
윤자경의 '검녀'

자경은 일 년 정도 검을 내려놓고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친구의 연습실에서 장구를 치며 휴식을 취했다. 삶에서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자경은 전 중앙일보 이만훈 국장 같은 인생 선배들을 만나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기도를 통해 욕심을 덜고 비워내면서 자신이 검신을 만났던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간다.

자경은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며 연습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어느 날 ‘한•일 친선 검도 교류대회’ 개막식 관람을 갔다가 일본 여검사(女劍師)와 김은정 관장의 검무 시연을 보고 깊은 깨우침을 얻고 아주 빠른 속도로 검무세계에 진입해 들어간다. 생각의 깊이만큼 몸의 움직임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몰입 기술들을 갈망한다.

자경은 반복훈련을 매우 즐긴다. 오후 3시쯤 시작하면 밤 11시쯤 끝나는 ‘만 번 정면 내려베기’ 훈련이다. 늘 8시간 이상 걸리는 훈련은 5000번 쯤 올라가면 고비가 오고, 9000번 올라가면 검에 불이 붙는다. 그녀는 스승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 이 훈련을 꼽는다. 자경은 유술에도 관심이 많다. 검을 해오다 보면 맨손에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순수무용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과의 대화가 춤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연습하는 시간은 기도 시간이다. 한국무용, 현대무용에도 몰입했던 그녀는 기본기에 대한 갈증을 심하게 느껴 발레 개인레슨을 3년 정도 받았다. 현악기의 소리에 예민한 자경은 1997년부터 5년간 새벽 6시에 나와 밤 11시 50분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연습실에서 연습에 매진한 때가 있었다.

자경이 예술을 품는 방식은 ‘삶을 무대처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는 무대처럼’, ‘만나는 모든 이들은 나의 관객이라 생각하고 설렘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정갈하게 단장하고 거울 앞에 선 모습에서 자신만의 장점 찾기,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기, 치열하게 살아낸 하루의 끝은 거울 앞에서 마무리’를 다짐한다.

윤자경의 '창화, 솔로'이미지 확대보기
윤자경의 '창화, 솔로'

‘윤자경 검무 창작소’를 통해 자경의 인생 3막이 시작되었다. 자경은 ‘태양의 서커스’가 철저한 자기 관리, 고심하고 의논한 조화로운 동작, 확고한 정체성을 보이는 것처럼 ‘배우는 움직임을 통해 정신의 성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경의 목표는 검무에 대한 체계적 연구, 창작검무 활동,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윤자경, 앞으로 한류스타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행운이 있기를 빈다.

○윤자경 주요 경력


WCO(세계문화오픈) 전통무예부문 대상 2연패(2002, 2004)

대통령 취임 중앙경축식 ‘평화를 위한 비상의 몸짓’(2005, 안무 및 출연)

미국 30개주 순회공연(1998~2001, 장검무 ‘한월조천무’, ‘수류계화’한미문화재단 주최)

방송/KBS ‘무인시대’(2003, 철랑 역)

SBS드라마 ‘연개소문’(2007, 쌍검녀 역 및 검술지도)

제45회 대종상시상식 개막공연 ‘불의 춤’(2008, 안무 및 출연)

윤자경 검무 창작소 대표
윤자경 검무 창작소 대표

예능/‘일요일이 좋다’, ‘옛날TV’, ‘아침마당’ ‘코미디 하우스’, ‘칼은 달빛을 가르고’ 외 다수(2007)

영화/‘조선 미녀 삼총사’(2013, 검술 안무지도)

연극/‘오구’(과수댁 역)(2004 동숭아트센터)

뮤지컬/‘화성에서 꿈꾸다’(궁녀장 역)(2007 경기도문화의 전당)

무용극/‘비연의 혼’(2006, 만명부인 역), ‘월인’ (2009, 국수호안무, 초승달(기억의 편린)역- 월광검무편, ‘제국의아침’-명성왕후이야기,삼성무용단 (2011)(여적장역) ‘검녀’(2015),‘창화’(2016)

가무극/‘적벽지애’(2015)(여적장 역 및 검술지도, 쟁이다인),

무예극/‘무예도’ 중 ‘주작의 날개’(2004, WCO세계문화오픈, 중앙일보 주최)

오페라/‘아! 고구려 고구려’(쌍검무 솔로)(2005)

기업행사/현대, 삼성, 대우 등 VIP 만찬 식후행사(쌍검무 솔로)

기타/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2011)

국립국악관현악단(2011제야의 밤)-박칼린의 뮤지컬 하이라이트 등 다수

디자이너 쇼 <차이킴 한복(2015) ‘현대 브릴리언트아트 아트 프로젝트’

평창테스트이벤트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및 바이애슬론 메인 공연(2017)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