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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딜레마…점유율 하락할까 섣불리 감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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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딜레마…점유율 하락할까 섣불리 감산 못해

이빨 빠진 호랑이 ‘OPEC’ 과거의 영예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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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이동화 기자] 과거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감산’이란 말만 나와도 국제유가는 바로 폭등했다. OPEC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1970년대 1·2차 오일 쇼크 역시 OPEC 감산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국제 원유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에 빠지며 국제유가 폭락이 이어지고, 이로 인해 산유국 재정이 악화되며 OPEC은 딜레마에 빠졌다.
2014년 말부터 끝없는 하강곡선을 그리던 국제유가는 지난달 OPEC 감산 합의 기대감으로 한 때 배럴당 5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감산 합의에 실패하며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29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급락세가 시작된 2014년 중반의 배럴당 100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내년 1월 인도분은 어제보다 1.85달러(3.9%) 내린 배럴당 45.2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도 1.85달러(3.8%) 낮은 46.39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일 대비 89센트 상승했지만 배럴당 44.6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번에도 감산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선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30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회의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 OPEC 영향력 왜 약해졌나?
세계 경제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OPEC은 왜 과거와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로 △OPEC 산유국 점유율 급감 △러시아 영향력 증대 △OPEC 내 분쟁 발발 △미국의 석유 수출 △중남미 시장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유가 결정 구조에서 OPEC의 영향력이 많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OPEC 산유국의 잇단 감산으로 전 세계 원유시장에서 OPEC의 시장점유율이 절반 이하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 10월 세계 석유공급량 9780만배럴 가운데 러시아·브라질 등 비OPEC 국가들의 산유량은 5704만 배럴을 차지한다. OPEC 산유국 산유량(3383만 배럴)의 1.5배 이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OPEC이 감산에 합의해도 섣부르게 감산을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OPEC 산유국이 감산에 돌입한 후 비OPEC 산유국이 판매를 늘리면 점유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셰일 업계의 시추가 지난해 정점에 달하면서 OPEC 점유율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난 5년간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은 일일 420만 배럴로 세계 전체 생산량의 5%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는 일일 900만 배럴 수준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감산을 한다 하더라도 전체 시장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OPEC의 감산이 이뤄지더라도 이로 인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대폭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유가는 도로 하방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셰일 업체들은 기술 발전을 거듭하며 생산비용을 크게 낮춰 OPEC 산유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셰일 업계는 배럴당 30~40달러대로도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OPEC이 감산을 한다 하더라도 생산 과잉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지난 1975년부터 미국산 원유 수출을 금지해 온 미 연방정부가 지난해 말 원유 금수조치를 해제하며 미국산 셰일오일 판매가 본격화된 것도 OPEC에는 ‘비보’다. 하지만 지난 5월 파나마 운하가 확장 개통하고 트럼프 당선인이 석유산업 활성화를 비롯한 에너지 부흥정책을 추진할 예정이어서 미국산 원유 도입은 향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전문가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OPEC 주도로 유가가 결정됐지만 세계 경제 카르텔이 무너지며 다극화 체제로 가고 있다”며 “OPEC의 통제력이 무너진 상황에서 비OPEC 산유국들의 목소리가 커져 결국 미국·러시아·영국·브라질 등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이 과연 OPEC 체제를 두고 볼지도 문제”라며 “OPEC 주도로 유가가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OPEC 합의 도출될까?
지난 27일 리비아가 감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이번 OPEC 회의에서도 감산 합의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OPEC 회의를 이틀 앞둔 상황에서 이라크가 하루 생산량을 455만 배럴에서 동결하고 이란도 한도 설정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나오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OPEC 감산 합의 실효성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다음 달로 다가온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2017년으로 예정된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에서의 불확실성, 그리고 중국의 경기둔화 가능성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OPEC 산유국의 감산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주겠느냐는 의미다.

달러화 강세도 유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달러가 상승하면 타 통화권에서의 석유 구입 비용이 증가해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주요 통화바스켓 대비 달러 지수는 현재 2003년 이후 최고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OPEC이 감산을 단행해도 전 세계 원유생산량은 높은 수준을 유지해 가격이 급상승할 가능성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동화 기자 d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