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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악마의 독약을 만들어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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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악마의 독약을 만들어낸 기업



건설부동산부정상명기자
건설부동산부정상명기자

[글로벌이코노믹=정상명 기자]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화학물질 사고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지난 2011년 4월 25일을 기점으로 다수의 환자가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로 입원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공통점은 폐 관련 질환이라는 것이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유아와 산모들이었고, 심지어 환자들이 사망하거나 회생불가의 상태로 빠져드는 일이 발생됐다.

서울 아산병원 측은 질병관리본부로 이 사실을 즉각 보고했고, 원인을 찾기 위한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신종 호흡기 감염 병으로 진단, 조사를 진행했으나 감염병과는 무관하다는 판명이 났다.

이후 조사 결과 환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지난 13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 결과 설명회 및 피해자 지원방안 공청회'가 열렸다. 그동안 진행된 연구결과와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의 등급판정 결과를 통보하고 앞으로의 지원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피해자만 127명, 이미 사망한 사례도 57건에 달했다.

이날 공청회에선 그동안 정부의 미숙한 구제책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맨몸으로 받아온 피해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의료보험 지원이 되지 않아 한 달 약값만 180만원에 이르는 피해자, 일가족 4명이 모두 피해를 입어 한 가정이 무너진 가족, 사랑하는 아이와 부인을 먼저 보낸 가장의 눈물 등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전해진 자리였다.

이 공청회를 통해 그동안 이뤄진 정부의 지원조치와 향후 관리 절차에 대한 계획이 얼마나 소극적으로 진행됐는지 알 수 있었다.

‘폐손상조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선 사망자 이외에 모든 피해자를 찾아가는 직접방문이 이뤄진다고 명시됐지만 방문조사를 받지 못했다는 피해자가 다수였으며, 실제 피해자들의 온라인 모임인 ‘가습기 피해자와 가족모임’에서도 정부의 소극적 대처에 대한 불안감이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보다 본인이 답답한 것은 피해를 주고도 뻔뻔히 장사를 하고 있는 기업이다.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해당 업체들은 사고가 터진 후 대형 로펌을 고용, 그 뒤에 숨어 본인들의 잘못을 회피하려했다.

지난해 11월 1일 '옥시 레킷벤키저'의 대표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개인 및 가족들에게 50억원 규모의 지원 기금을 자발적 조성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내놓겠다는 50억 원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 판매를 통해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라고 한다. 수많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내놓은 돈이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로 벌어들인 수익금액 뿐이란 것도 용납이 안가고, 무엇을 믿고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는지 의문이다.

아울러 사고의 피해 보상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의문점이다. 왜 민간 기업이 만들어낸 인재(人災)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가? 100% 민간자본을 통한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하며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피해자 추적 관리와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카테고리는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악마의 독약이 만들어낸 상흔은 피해자의 주위에서 아직도 망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정신적·육제척 트라우마를 치료해줄 백신 개발을 위한 정부·기업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속적인 대중의 관심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