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이 운동에 참여한 것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효리가 지난 2월15일 아름다운재단에 보낸 자필편지와 4만7천원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이효리의 자필편지에서 이효리는 “해고 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을 보며 마음으로만 잘 해결되기를 바랐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고 적고 “그러던 중 한 아이 엄마의 편지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기자는 보수 성향인데 기자 주변의 보수인들은 대부분 ‘노란 봉투’ 운동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대체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노란 봉투’ 운동은 생각보다 보수사회를 상당히 위협하고 있다.
총도 칼도 아닌 ‘노란 봉투’와 그 안에 든 ‘4만 7천원’이 어떻게 보수를 위협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화 권력’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기자의 주장에 조금은 공감할 것이다. 문화 권력이란 문화의 힘이다. 본래 중국 역사를 보면 몽골족, 여진족, 만주족이 중원을 지배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여진족과 만주족은 어떻게 되었나? 아예 사라져 버렸다. 몽골족은 그들이 살던 초원에 모여 살면서 겨우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중원을 침략한 자들은 힘으로는 중원을 잠시 지배했을지는 몰라도 한족(漢族)의 문화에 패배하여 중원에서 사라져 버렸다.
‘노란 봉투’에서 암시하는 바는 한국 보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이 결국 ‘악당’들이라는 것이다. ‘4만 7천원’을 ‘10만 명’이 모아서 ‘47억 원’을 물어주자는 이야기는 결국 ‘10만 명’이 단결하여 ‘악당(기업)’과 맞서 싸우자는 이야기와 똑같은 말이다.
아마 보수사회의 누군가 “이효리는 돈도 많이 벌었고 호화생활을 누리면서 겨우 4만7천원을 내냐”고 이효리를 위선자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효리의 4만7천원은 상징적 액수일 뿐이다. 한마디로 4만7천원씩 내라고 일부러 4만7천원만 낸 것이다.
보수사회가 생각해야 할 점은 적어도 최소한 보수 세력이 ‘공공의 적’으로 비난받거나 ‘극악한 세력’으로 군중의 원한을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에게 배상금을 받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배상금을 받아내더라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받아 내거나 ‘과도한 고통’까지 같이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