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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총리님, 어리석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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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총리님, 어리석어 죄송합니다

[글로벌이코노믹=이성규기자]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은 상대방에게 큰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내뱉은 말이 고의가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늘 주의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생각해보자. 누가 더 어리석은 것일까? 현 총리의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는 발언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당연히 분노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현 총리는 "그런 의도가 아니였다"며 다급히 번복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쏟아져도 담을 수 있거나 다시 구할 수 있지만 '말'은 절대 그럴 수 없다.

현 총리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이번 사태에 대해 원인과 책임소재를 가려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발언은 뭘 뜻하는 것인가? 자신이 뱉은 말이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몬 것이나 다름없으며 자기 함정에 빠진 것이다. 국민들을 어르고 달래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번 발언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정말 현명한 사람은 변명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발언을 '오해'라는 포장으로 감싼다. 하지만 오해를 받게 만든 것 또한 그 사람의 일부이고 당사자의 잘못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보제공에 동의했다" 이 말은 또 어떤가?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 가서 계좌를 개설할 때 담당직원은 형광색 팬으로 우리가 싸인해야 할 곳에 아주 친절히 명시해준다. 정보제공 조항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싸인하기에 여념이 없다. 설명은 필요없고 직원들은 그저 계좌 개설에 열을 올린다. 정보제공 조항에 대한 법안을 만들고 이를 통과 시키는 사람들은 상세히 알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날이 갈수록 지능 범죄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은 자기 방어를 위한 조항을 추가하기 시작했고 이는 점점 길어졌다. 또한 용어들은 날로 발전해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률 사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정보제공동의서에 명시된 내용도 확인할 시간도 없다. 가장들은 아내와 잠들어 있는 자녀들을 보며 힘들어도 참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출근 길에 나선다. 아내들는 남편이 힘들게 번 돈 한 푼 두 푼 아끼며 '잘 살 수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남편과 자녀들을 뒷바라지 한다.

경제는 어려워져 먹고 살기도 힘드니 금융사들이 제시하는 조항을 일일이 확인하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 그냥 믿는다. 책임을 따진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금융사들을 믿은 것이 어리석었다. 정보활용동의가 이번 사태를 만든 것이니 국민들은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이제 동의하지 않아야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하나? "우리가 어리석었습니다. 다시는 믿지 않겠습니다. 어리석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