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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마법'으로 고객에 감동 넘어 감명을 드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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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마법'으로 고객에 감동 넘어 감명을 드려야죠"

[한국의 맛-국내 특급호텔 이정기 일식 조리장]

'고객 감동' 위해 아이스 카빙 하는 국내 최연소 조리기능장


다가올 동양문명권 시대 대비해 '오리엔탈 음식' 연구 중


'晝讀夜讀' 석·박사 학위에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획득


"사케는 4가지 타입 맛·향·어울리는 음식·마시는 법 달라"

▲이정기일식조리장
▲이정기일식조리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국내에는 약 400여 명의 조리기능장이 있다. 조리인에게는 최고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조리기능장은 그 만큼 따기가 힘들고 그러기에 희소가치가 높다. 국내 한 특급호텔의 일식 조리장으로 있는 이정기 씨(38)는 불과 서른세 살의 나이에 조리기능장을 획득, 최연소 조리기능 보유자로 올라 있다.

그는 조리기능장 뿐만 아니라 아이스 카빙을 할 줄 아는 정말 몇 안 되는 조리사이기도 하다. 그의 관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 술인 사케의 맛을 감별해내는 키키자케시(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을 획득했다. 아이스 카빙이나 사케 소믈리에는 다름 아닌 손님에게 감동을 넘어 감명을 주고자 하는 조리사로서의 남다른 자부심의 발로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을 주기로 인생에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 늘 자신의 길을 향해 정열을 불태우는 이정기 조리장. 일식 조리사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는 다음 십 년을 위해 오리엔탈 음식을 공부중이라고 한다. <편집자 주>

-국내 최연소 조리기능장 보유자라면서요?

“서른세 살인 2008년에 조리기능장을 취득했어요. 종전 기록을 1년 앞당겼지요.”

-최연소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최연소라는 훈장(?)은 자랑스러우면서도 항상 마음을 무겁게 해요. 어린 나이에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시선도 있고, ‘조리기능장이니 뭔가 남과 다를거야?’하는 시선이 공존합니다. 그래도 신라호텔을 거쳐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13년 간 일식조리사 생활을 했으니 나름 실력도 인정받은 것 같아 자랑스러워요.”

지금의 직장에 지난 2000년 4월에 입사했으니 올해로 딱 13년째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 법. 이 조리장은 최근 변화를 주기 위해 일식조리부에서 오리엔탈부로 자리를 옮겼다.

“잘하는 일을 계속 하는 건 편안하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도태될 수 있어요. 사회에서도 한 가지 재능을 요구하지 않고 다양한 재능을 요구하듯이 조리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일식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오리엔탈 음식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제 자신을 담금질하고 싶었어요.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도전해야지 나이가 들면 변화가 두려워 용기를 내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이정기 조리장의 도전정신은 그의 생활 이력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조리기능장을 획득해 안주하는가 싶더니 지난 2011년에는 일본 정통 술의 색과 향과 맛 등을 감별하는 ‘키키자케시(唎酒師)’ 자격증을 획득했다. ‘키키자케’는 ‘시음하다’ 혹은 ‘시음해서 감정하다’라는 뜻으로 사케 소믈리에를 의미한다.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을 어떻게 획득하셨는지요?

“예전에는 일본에 직접 가서 자격증을 따야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자격증을 딸 수 있는데, 4개월 만에 끝내지 못하고 저는 8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통과할 수 있었어요. 일본 주관사에서 문제를 내주면 직접 작성해 보내고 채점을 거쳐 합격여부를 결정합니다. 보통 홀에서 일하는 웨이터가 사케를 판매하지만 조리사가 전문가로서 손님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판매한다면 믿음과 신뢰를 더 줄 수 있을 것 같아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습니다.”

최근 숭실대에서도 ‘사케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했다. 과정을 이수하면 자격증이 나온다. 홀에서 일하는 웨이터의 경우에는 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다수 있지만 이정기 조리장처럼 조리사가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는 드물다.

-사케를 직접 먹어보며 감별해야 하는데, 온라인 자격증 취득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온라인으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 하지요. 특히 사케의 맛과 향을 분별하는 게 생명이기 때문에 지시한 지문에 따라 직접 사케를 마셔본 후 맛의 미세한 부분을 적어 보냅니다. 사전을 뒤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 뒤 정확하게 기술해야 하는 게 큰 부담이었어요.”

-사케와 정종은 같은 것인가요?

“사케는 쌀, 누룩, 물을 원료로 하여 빚어서 걸러낸 맑은 술(청주)을 말합니다. 일본에 양조장이 2000개 이상 있으니 그 종류는 엄청 많지요. 일반적으로 청주를 ‘정종’이라고 알고 있는데, 정종은 일본술의 한 상표인 ‘마사무네(正宗)’라는 무사 집안이 만든 술일뿐입니다. 따라서 일본술을 정종이라고 할 게 아니라 일본 청주 또는 사케라고 해야 합니다.”

사케의 종류가 많은 건 쌀, 누룩,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키는 사케의 특성상 각 지역마다 쌀과 물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천쌀과 여주쌀의 맛이 다르듯이 일본 지역의 쌀맛도 다른 것이다.

-사케의 등급은 어떻게 나누어집니까?

“우리가 흔히 먹는 현미를 100이라고 하면 10~15% 정도 깎아낸 게 백미이고, 현미를 깎아서 남은 백미의 부분을 백분율로 나타낸 것을 정미율이라고 하는데, 이 정미율에 따라 사케 등급이 나누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주는 30% 이상 깎아낸 주조호적미를 사용한 술을 상급의 청주로 치며, 쥰마이(純米)<다이긴죠(大吟釀)<긴죠(吟釀)<혼죠조(本釀造)로 갈수록 고급술이지요.”

일본술의 원료인 현미의 외측 부분에는 비타민, 단백질, 지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겉면에 있는 이들 성분이 이상 발효될 때 잡내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제거하고 순수 탄수화물로 빚은 술이 고급술이 되는 것이다.

-일본술은 4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떻게 다릅니까?

“먼저 쿤슈타입이 있어요. 쿤슈타입은 맛이 엷고 향기가 진한데, 다이긴죠, 긴죠슈가 여기에 속하고, 봄부터 초여름에 적합하며 유자향이 나는 음식과 잘 어울려요. 두 번째로는 쥬쿠슈타입이 있어요. 쥬쿠슈타입은 향기가 진하고 맛이 진한 게 특징이며 대신에 가격이 비싸요. 특히 쥬쿠슈타입인 고슈는 가을이나 겨울에, 그리고 돼지고기와 같은 중후한 요리에 잘 어울립니다. 세 번째로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소슈타입이 있어요. 휴츠우슈, 혼조슈, 나마자케가 속한 소슈타입은 가격이 저렴해 일본인의 70% 이상이 마시고 있어요. 특별히 계절을 따지지는 않지만 여름에 적합하고 일식이나 양식을 가리지 않고 어느 요리에나 무난한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쥰슈타입은 향기가 연하고 맛이 진하며 깊이가 있는 준마이슈가 여기에 속해요. 가을과 겨울에 적합하며 일식요리와 가장 잘 어울리지만 농후한 서양요리나 중화요리에도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사케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 있다면….

“쿤슈타입의 고급술인 다이긴조는 데우면 향기가 날아가기 때문에 5도에서 15도 이하에서 음용하는 게 좋습니다. 반면에 쥬쿠슈나 준슈타입은 약간 높은 온도인 50도에서 60도 사이에서 도쿠리에 데워 드시면 맛이 환상적입니다. 만일 쿤슈타입을 차갑게 마시지 않고 뜨겁게 해 마신다면 향이 날아가지요.”

-조리세계에는 언제 입문하셨나요?

“사업을 하시던 부친께서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어요.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하던 중 주변사람들이 조리사가 되어 일본요리를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추천해 귀가 솔깃했어요. 신문을 보다가 대학에 조리과가 있다는 걸 알고 조리로 돈을 벌어보자는 꿈을 가졌지요. 검정고시를 거쳐 독학으로 고려대 병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게 되었고,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영양사 자격증과 위생사자격증을 따고 조리사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해 조리기능장을 획득했습니다.”

이 조리장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IMF가 터졌다. 조리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지만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았다. 자필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20통을 작성해 발품을 팔며 국내 호텔 20여 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한 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사실 연락이 한 통도 없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생선회를 원 없이 떠보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보자는 생각에서 제주도 추자도로 가 배를 탔어요. 제주 옥돔을 잡아 생선회를 뜨는 재미를 붙일 무렵 신라호텔에서 양식당 알바를 제안해왔어요. 1년 정도 일하다가 ‘일식의 대가’로 불리는 안효주 차장(현 청담동 스시 효 대표)을 찾아가 일식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일반 일식집을 소개해주셔서 강남과 홍대에서 2년 정도 퓨전 일식요리를 배웠지요. 그 다음 2000년 4월 24일에 특급호텔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낮에도, 밤에도 공부만 했다고 들었습니다.

“주간에는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세종대 사회교육조리원에 등록해 일식을 공부했어요. 호텔에서 일하는데 익숙해지자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세종대 조리외식경영학과 석사에 이어 2012년 8월에 ‘앙카케 소스의 최적화 및 이화학적인 방법’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식품영영학을 전공한 조리사로서 다른 조리사와 비교하면 무엇이 다릅니까?

“나름대로 식품의 영양적인 측면을 고려하게 되고 조리하는 동안 생기는 각종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지 예로 문어를 삶을 때 일식에서는 무와 녹차를 넣습니다. 처음엔 왜 이걸 넣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도 명쾌하게 답하는 사람이 없어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연구를 해보니 무에 들어 있는 이노신산 성분이 문어를 부드럽게 하고 녹차의 탄닌 성분이 적갈색 문어를 붉게 만들어 맛있게 보이도록 하지요.”

-끊임없이 자기계발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조리사라면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요리 하나만 가지고서는 경쟁력이 없어요. 다른 조리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얼음 조각이나 야채 조각으로 차별화 하고 한일 전통주를 비롯해 한국의 차와 커피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가짐으로써 손님을 더 정성껏 모실 수 있지요. 손님의 눈높이에 서비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커피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한 이정기 조리장은 분명한 인생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다. 인생을 십 년 단위로 쪼갠 후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요소를 찾아 하나씩 달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일식당 경영을 목표로 정한 그는 각종 자격증을 따고 경영공부를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인생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집에서 따라해 보는 이정기 조리장의 비법 2제(題)


♠ 모둠 생선회


■ 이정기 조리장의 모둠 생선회 레시피


참치뱃살 60g, 참치등살 60g, 농어 50g, 도미 50g, 무 100g, 오이 50g, 당근 50g, 유채꽃 5g, 일본깻잎(시소) 10장, 와사비, 소금, 얼음(1장)

■ 모둠 생선회 만드는 방법


① 얼음을 도미모양으로 카빙을 해두고, 시소와 유채꽃은 찬물에 담근다.

② 참치는 미지근한 소금물에 담가 해동한 후 건져 면보에 싸 놓는다.

③ 무는 껍질을 제거하고 얇게 돌려 깎기하여 결 반대방향으로 얇고 길게 채 썰어 찬물에 담가둔다.

④ 당근은 꽃모양을 만들어 찬물에 담가두며, 오이는 왕관이나 소나무 모양으로 만들어 찬물에 담가둔다.

⑤ 와사비는 찬물에 개어 모양을 잡아 놓고, 농어와 도미는 껍질을 제거한 다음 면보에 싸둔다.

⑥ 참치는 도톰하게 각 썰기하고, 농어는 얇게 3쪽, 도미는 잘라서 채 썬 무위에 돌려 담는다.

⑦ 얼음접시에 무채를 올리고 시소를 올려놓은 다음 참치, 도미, 농어를 보기 좋게 담는다.

⑧ 당근과 오이 모양 낸 것, 와사비를 얼음접시에 담아 완성한다.

옥도미 찜


■ 이정기 조리장의 옥도미 찜 레시피


생옥돔 300g, 차소바 100g, 계란 1개, 유채꽃 5g, 대파 10g, 다시물 160㏄, 미림 20㏄, 간장 20㏄, 감자전분 6g

옥도미 찜 만드는 방법


① 생옥돔을 포를 뜬 다음에 소금을 뿌려두며, 유채꽃을 소금물에 데치고 대파를 얇게 채 썰어 둔다.

② 차소바의 끝부분에 고무줄을 묶고 7분간 삶은 후 얼음물에 씻어둔다.

③ 계란의 난백을 분리시켜 차소바에 묻히고 위의 생옥돔에 넣어 말고 랩으로 묶어준 후 20분간 찜통에 찐다.

④ 다시물 160㏄, 미림 20㏄, 간장 20㏄를 끓이고 감자전분 6g을 넣어 앙카케 소스를 만든다.

⑤ 옥돔을 잘라 접시에 올리고 앙카케 소스를 부어준 후 대파와 유채꽃을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