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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식재료가 양식을 만나 환상의 맛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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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식재료가 양식을 만나 환상의 맛 탄생"

[한국의 맛-해비치 호텔 총주방장 이민 상무]

모란·양평·정선 등 5일장과 축제 현장 돌며 식재료 연구


제주에서 나오는 해산물로 '슬로푸드' 만들기 실험 중


포장마차서 임원까지 "포차가 요리사 생활의 출발점"


요리에서 가장 좋은 향신료가 있다면 그건 바로 정성

▲해비치호텔이민상무
▲해비치호텔이민상무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해비치 호텔 총주방장 이민 상무는 원래부터 조리사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다. 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꿈꾸었으나 예기치 않게 찾아온 가정형편이 그의 인생행로를 조리사로 바꾸어 놓았다. 부모님께서 연이어 돌아가시자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두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옆에 포장마차를 열었다.

포장마차는 그런대로 잘 나갔다. 1년여 동안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그는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조리사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주의 호텔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틴조선호텔로 실습을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남보다 훨씬 빠르게 총주방장에 오르고 임원으로 승진했다. 24년간의 웨스틴조선호텔을 정리하고 지금은 해비치 호텔의 총주방장으로 있는 이민 상무를 만났다. <편집자 주>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에 이름을 내건 룸이 있었는데….

“나인스게이트는 1924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프랑스 레스토랑이에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다소 침체되자 호텔 측에서 상무라는 임원의 직책을 내려놓고 제 이름을 걸고 활성화를 시켜보라고 했어요. 국내 최초의 프랑스 레스토랑이라는 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라는 과제를 떠안은 것이지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끝에 한국식 식재료를 프랑스 요리 기술로 풀어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모란‧양평‧정선 등 전국의 5일장과 지역 특산물을 내건 축제 현장을 누비며 식재료를 연구하는 한편 한식과 결합한 프랑스 요리 메뉴를 내놓았지요. 손님의 반응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이민 상무는 이를 계기로 전국의 5일장과 축제에서 나오는 신선한 제철 음식 재료를 꿰뚫게 되었다. 먼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현장을 다녀온 뒤에는 구해온 식재료로 메뉴를 완성해 하나하나 기록해왔다.

“나인스게이트 룸 다섯 개 가운데 제 이름이 붙은 방에는 한식과 양식의 절묘한 데이트가 계속 이루어졌어요. 꼬막‧죽합‧쭈꾸미‧고사리‧두릅‧키조개‧백김치를 접목한 메뉴를 개발했는데, 특히 양갈비와 붉은 김치의 매운 맛을 줄인 백김치는 너무나 잘 어울렸어요.”
-호텔조리학교를 나온 후 목표로 했던 특급호텔의 총주방장에 이어 임원으로까지 승진 하셨습니다.

“요리를 하는 조리사의 꿈은 총주방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에 입문한 지 16년 만인 지난 2000년에 총주방장이 되었고, 2004년 3월에 식음료를 책임지는 수석부장에, 2005년 11월에 상무보로 승진했어요. 다른 조리사에 비해 훨씬 빠른 승진인데다가 조리사로서 임원의 직책을 맡다보니까 책임감도 커졌어요. 당시의 기분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이민 상무는 지난 2000년 총주방장이 된 후 3년 정도만 일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껴주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 4년제 대학의 학장이 그를 찾아와서 대학교수의 자리를 권유한 가운데 후학을 가르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리사로서 임원 자리에 도전해볼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 결국 그는 조리사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가보자는 생각에서 교수자리를 포기했다.

“임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실제 임원이 되고 보니 열심히 인생을 산 결과를 하늘이 보상해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2005년 11월에 상무보로 승진한 후 조선호텔 식음료뿐만 아니라 조선호텔 코엑스, 인천공항 등 식당 10여개를 관리했어요. 그때 경영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2009년 10월에 제주 해비치호텔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과감히 직장을 옮겼습니다.”

조선호텔에서 24년 간 근무하고 옮긴 해비치호텔은 같은 특급호텔이지만 위치한 제주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이민 상무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제주는 바다를 끼고 있어 식재료가 그 어느 지역보다 풍성해 조선호텔에서 시작한 한식과 양식과의 접목을 더욱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정든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면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를 거부하게 됩니다. 마침 해비치호텔의 오너가 직접 찾아와서 함께 최고의 음식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열정에 감동해 10월 31일까지 근무하고 단 하루만 쉬고 바로 그 다음날 출근을 했어요.”

-우리는 흔히 요리를 예술이라고 합니다. 상무님에게 요리란 무엇입니까?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끝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를 알면 또 다른 하나를 알게 되어 지평을 넓혀가듯이 요리는 완성을 향해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것이지요. 음식이 하나 있다면 그 음식에서 파생되는 게 엄청납니다. 제게 요리는 끝없는 공부입니다.”

-젊은 날 주경야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남들은 공부가 지겹다고 하지만 전 독학하는 걸 재미있어 해요. 방송대에서 8년 6개월에 걸쳐 경영학을 수학했어요. 일하며 하느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빨리 끝내겠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한 학기에 6과목씩 이수를 했어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까닭에 하이텔 단말기를 빌려서 전화기에 연결해 힘들게 공부했어요. 당시에 반타작만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대학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그때 공부한 경영학이 지금은 큰 도움이 됩니다.”

이민 상무는 어렵사리 대학과정을 마친 뒤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에서 급식경영을 전공했다. 모 대학 교수가 원서를 사다주며 시험을 보도록 권유해 대학원을 다니게 된 것이다.

“제가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누구보다 인복(人福)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월터 로이홀드 오스트리아 총주방장이 제 인생을 만들어준 가장 큰 은인(恩人)입니다. 호텔조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선호텔의 베이커리부서에서 일했는데, 제 욕심은 조리부서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년이 지난 후 로이홀드 총주방장을 찾아가 당돌하게 ‘부서를 옮겨달라. 난 당신과 같은 총주방장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만일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당돌한 저의 태도에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는 저의 열정과 1년 동안 베이커리부서에서 일한 평판을 듣고 1주일 만에 이태리 식당으로 옮겨주었어요.”

-23세에 포장마차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 이야기를 해주시죠?

“기계공고를 나온 저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꿈을 접어야 했어요. 3년 후에 아버지마저 고혈압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동생 둘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23세에 포장마차를 운영했어요.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옆에 차렸는데 닭똥집하고 순대국밥을 팔았어요. 1년 남짓 운영하다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경주의 호텔학교에 들어갔어요. 돌이켜보면 포장마차가 제 조리사 생활의 시발점이었지요.”

-조선호텔에 입사한 초년 조리사 시절에 하루에 감자 800개를 깎았다고 들었습니다.

“베이커리 부서에서 이태리 식당 ‘예스터데이’로 옮긴 후의 일이지요. 20㎏짜리 감자 한 부대를 적게는 5개, 많게는 8개씩 깎았어요. 이태리 식당이라 해쉬브라운이나 피자 등에 감자가 들어가니까 조금 깎아서는 감당을 못해요. 그래서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고, 일을 끝내고 학원에 갈 때쯤이면 허기가 져요. 그때 학원에 가기 전 먹는 피자 한 판은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피자를 좋아하시는지요?

“그때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피자를 좋아합니다. 당시 이태리 식당에 근무할 때 아침조로 일했어요. 후암동의 단칸방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했어요. 대학에 가고 싶어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했지요. 아침 5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일하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피자 한 판을 허락 받고 먹은 뒤 퇴근해 학원에 갔어요. 지금도 그때의 피자 맛을 못 잊는데, 입맛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레시피가 달라졌기 때문인지 확실히 맛이 달라졌어요. 제게는 추억의 음식인 피자를 지금도 반판은 거뜬히 먹습니다.”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줍니까?

“후배들에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라고 조언합니다. 요리의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면 음식은 얼마든지 맛있게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음식을 할 때 정성을 다하라고 강조해요. 부모님이나 내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며 요리를 한다면 누구든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요리에서 가장 좋은 향신료가 있다면 그건 정성이라는 향신료입니다.”

-제주음식으로 슬로푸드를 만들고 있다면서요.

“섬 지방인 제주의 음식은 한식이면서도 좀 독특해요. 제주에서 나오는 식자재와 향신료를 사용해 제주의 음식을 세계적인 슬로푸드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최근 슬로푸드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브라를 다녀왔는데, 제주음식이 슬로푸드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알았어요. 새로운 음식문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슬로푸드란 무엇입니까?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의 반대개념이 아니라 그 지역에 나오는 식자재를 가지고 그 지역의 전통방식에 따라 조리하는 걸 말합니다. 말하자면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었던 음식이 슬로푸드이지요. 제주에서는 해초를 비롯해 풍부한 해산물과 함께 야채와 육류가 다른 지방과는 약간 다른 특색이 있어요. 예를 들어 돼지고기 수육인 ‘돈배고기’의 경우에도 된장을 풀고 도마에서 투박하게 썰어 냅니다. 제주에서는 돼지고기에 비계가 없으면 불평이 나오는 등 투박해보이지만 나름대로 맛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제주에서 생산되는 해초나 미역, 그리고 성게, 해삼, 한치, 갈치, 고등어, 자리돔, 소라 등을 가지고 계속 한국식 슬로푸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집에서 따라해 보는 이민 상무의 비법 2제(題)


훈제연어 퀘넬과 오징어 그릴구이


■ 이민 상무의 훈제연어 퀘넬과 오징어 그릴구이 레시피


오징어 20g, 루꼴라 페스토 1테이블스푼, 루꼴라 5g, 훈제연어 30g, 적양파 얇게 슬라이스 2g, 사워크림 1/2티스푼, 레몬쥬스 1/4티스푼, 금귤 1개, 소금과 후추 약간, 계절 샐러드 1/4컵, 레몬쥬스와 올리브오일 1/2티스푼, 오징어 먹물 1티스푼

훈제연어 퀘넬과 오징어 그릴구이 만드는 방법


① 오징어는 잘 손질하여 숯불에서 그릴하여 준비해 놓는다.

② 훈제 연어는 얇게 슬라이스 한 후 펼쳐서 살라멘더에 가볍게 그을리고, 포크를 이용해 거칠게 부순 후 루꼴라 슬라이스, 얇게 자른 적양파, 소금, 후추, 레몬쥬스, 사우어크림을 넣고 버무려 놓는다.

③ 금귤은 콩피(confit)로 만들어 그릴에 굽는다

④ 레몬쥬스와 올리브 기름으로 드레싱을 만들어 샐러드와 버무린다.

⑤ 접시에 붓을 이용하여 오징어 먹물로 장식하고 그 옆에 연어 퀘넬, 구운 오징어, 금귤, 샐러드 순으로 담는다.

단호박,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송로버섯소스의 한우 쇠고기안심스테이크


■ 이민 상무의 한우 쇠고기안심스테이크 레시피


한우안심 140g, 소금&후추 약간, 단호박 30g, 아스파라거스 3조각, 산마 1조각, 송로버섯소스 20g,

한우 쇠고기안심스테이크 만드는 방법


① 한우 안심을 140g으로 썰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② 단호박을 모양내어 썰은 후 찜통에서 쪄 내어 꿀을 바른다.

③ 아스파라거스를 데쳐낸 후 약 3~4㎝ 길이로 잘라놓는다.

④ 마를 얇게 슬라이스하여 140~150도 기름에 노릇하게 튀긴다.

⑤ 한우는 미디움으로 구워서 접시에 올린 뒤 단호박, 아스파라거스를 담는다.

⑥ 송로 버섯 소스를 뿌린 뒤 튀긴 마로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