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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공부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요리는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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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요리는 너무 좋았어요"

[한국의 맛-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홍일점 오보아 셰프]

한쪽 귀 안 들려도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


'서른 잔치'는 청와대 조리사 되어 나라위해 일했으면…


마셰코 출연이 인생의 전환점…곧 '푸드 에세이' 출간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지난해 열린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1. 3800명의 조리사들이 경쟁해 1차로 340명, 2차로 100명, 3차로 40명, 4차로 20명, 최종 15명이 선발된 가운데 홍일점으로 톱6에 오른 오보아 씨.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늘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요리를 대하는 그는 비록 영예의 1등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숱한 화제를 남긴 주인공이다.

특히 오보아 씨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자주 “순수하게 요리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중학교 시절 남들은 국영수 책을 들고 입시학원을 찾아다닌데 비해 오보아 씨는 베이커리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남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요리의 세계에 빠졌던 그가 걸어온 길은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분명 장인의 길에 다름 아니었다. <편집자 주>

-언제부터 요리를 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제 손으로 초코칩 쿠키를 구워 동네 어르신께 나누어준 게 요리의 시작이었어요. 어르신들의 칭찬에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벅차고 자랑스러웠어요. 당시엔 변변한 오븐도 없었지만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사온 전기식 오븐에 쿠키를 구웠죠. 이게 인연이 되어 중학교 2학년 때 입시학원을 다니는 대신에 본격적으로 베이커리학원을 다니며 요리를 배웠어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순수하게 손으로 쿠키를 만드는 창조적 활동이 너무 좋았어요.”

-학교 공부와 담 쌓으면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중학교 3학년 학기말이 다가오자 진학할 고등학교가 없었어요. 사립학교인 동광학원이 서서울생활과학고로 이름을 바꾸고 조리학과 1기생을 모집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까지 저는 베이커리를 만드는 데만 관심을 두었을 뿐 자격증 따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자격증을 따면 입학시켜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사는 분당에서 학교가 있는 구로동까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이나 걸려 학교에 도착했어요.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 학교인지라 논밭을 지나며 다녔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하게 지냈어요.”

-매일 왕복 4시간을 다니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든 줄도 모르고 힘이 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마음과 달리 몸은 서서히 지쳐갔고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쓰러졌어요. 치료차 병원에 누워 있는 10일 동안 학교에서 실기시험이 있었어요.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장에 호스를 두른 채 시험을 치러갔지요. 지금 생각해도 당시 요리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때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복어 제과 제빵 등 조리기능사 자격증 7개를 따 최다 자격증 보유자가 되었어요. 하지만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라 자격증은 기초 중의 기초인데다가 다양한 자격증 때문에 선택할 길이 많음으로써 오히려 갈피를 못 잡는 원인이 됐어요. 고등학교 성적도 요리 실습 점수는 모두 A+인데, 다른 과목이 다 깎아 먹어 대학에 들어갈 곳이 없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인생의 두 번째 고비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나요?

“한국 정서로 볼 때 대학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 항목이잖아요.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요리에 도움이 될 영양학을 전공하자는 생각에서 신구대 식품영양학과(3년제)를 선택했어요. 제가 영양학에 대한 수준을 너무 높게 잡았는지는 몰라도 대학의 커리큘럼에 대단히 실망했어요. 화학 수업이 싫어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이 정말 싫으니 숙제로 대체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교수 입장에서는 ‘뭐, 이런 얘가 다 있느냐’며 황당해 했지요. 교수님은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아밀라아제(최적 pH 6.6) 5탄당의 구조를 과학기구로 만들어오라’고 과제를 주셨어요. 저는 인터넷 자료를 뒤지며 구조를 만들어 갔어요.”

이렇게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오보아 씨는 2007년 무스쿠스에 입사해 베이커리 부서에서 경력을 쌓다가 2009년에 그만두었다. 반복되는 일을 하는 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어렸을 때 해외로 다녔던 경험이 시야를 넓혀준 덕분에 현실을 도피하고 회피하고 싶어 처음으로 혼자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에서 겨우 익힌 기초 일본어로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며 막연한 행복을 느꼈어요. 그런데 일본유학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일본에 가면 아시아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아 고민에 빠졌어요. 동료의 추천으로 호주를 훑어 봤어요. 호주는 일본과 달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어서 선택할 게 많을 것 같아 부모님께 무조건 무릎 꿇고 호주를 보내달라고 떼를 썼지요.”

백호주의(白濠主義) 나라 호주는 오보아 씨에게 그리 녹록치 않았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아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놓고 자러가자고 말하는 호주인이 있는가 하면, 계란을 던지는 호주인도 있었어요. 게다가 한국 여성들은 끼리끼리 모여다니며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저를 두고 험담을 하고 다녔어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면서 일주일 내내 펑펑 울었어요. 그러나 독한 마음으로 1년 뒤에는 너희가 아니라 내가 웃게 될 거라며 버텼지요.”

실제로 1년 후에는 한국인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오보아 씨는 영어로 유창하게 일상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어를 의식적으로 쓰지 않기 위해 부모님께 전화도 하지 않은 고집 덕분이다. 꿈도 영어로 꿀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랭귀지 코스를 끝내고 어떤 일을 했습니까?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세컨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어학원이나 농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해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농장에서 일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토마토, 사과, 배 등을 어떻게 관리하고 수확하는지를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고구마를 어떻게 심고 수확하는지를 호주 농장에서 처음 알았어요. 농장에서 일 하면서 레스토랑에 가 음식을 남겼던 게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지를 깨달았지요. 식탁의 음식에 대한 존중감을 배웠다고 할까요.”

-농장에서 일한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요?

“지인의 추천으로 호주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호주 전통음식이라고 해보았자 비프 파이(beef pie), 피시 엔드 칩스(Fish and chips), 바비큐 밖에 없잖아요. 헤드 셰프는 돈을 안 받고 도와줄 때는 정말 잘해주다가 정당한 임금이 지불되자 사람이 180도 달라지는 것 있죠. 왼쪽 귀가 잘 안 들리는 장애를 교묘하게 이용했어요. ‘저 한국 여자애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고,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맹비난을 해요. 좌절의 연속이었죠.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었어요. 절대로 그만두라는 소리는 하지 않고 스스로 그만두도록 만드는 기술이 놀라웠어요.”

-호주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하셨나요?

“속상하게 그만두고 나서 찾은 일이 그리스 레스토랑이었어요. 이곳은 호주인과 다르게 그리스계 호주이민자들이니까 그네들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끼리 똘똘 뭉쳐 커뮤니티가 강했어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인터넷으로 '깔리메라'(아침인사), '깔리스뻬라'(점심인사), '깔리니흩따'(저녁인사) 등 인사말을 익히고 살갑게 대하니 저에게 그리스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한 식구처럼 대해주더군요. 정말 편안하게 일하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베이커리인데, 요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요리인생에 회의가 들며 슬럼프에 빠진 상태에서 한국에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며 들어오라고 해요. 그리스 레스토랑 주인에게 한국에서 최대한 일을 빨리 보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서둘러 귀국을 했어요.”

-원래 호주로 다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안 돌아가신 거네요.

“그렇게 된 셈이지만 그리스 레스토랑 주인과 지금도 통화를 하며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할머니 장례식에는 참석 못했지만 사십구재가 끝난 후 인생 최대의 슬럼프에 빠져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져들었어요.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할머니께서 꿈속에 나타나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때 ‘더 이상 좌절하지 말고 네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라’는 의미로 다가왔어요. 2011년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1’을 방송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단 출연신청을 한 후 결과를 기다렸어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떨어지면 빨리 호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1차 합격은 물론 최종 15인에 들었어요.”

오보아 씨는 최종 경쟁에서 톱6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목표보다 자신의 극심한 슬럼프를 이겨내는 발판으로 삼자는 생각에서 가볍게 접근했다.

“심사위원이 주는 미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렸을 때의 순수한 기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나 좋았어요. 직접 손으로 창작한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좋았던 순수한 때로 돌아간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전략이나 경험이 부족해 우승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해요.”

방송이 끝난 후 호주로 돌아가려던 그는 뜻밖에 출판사의 제안으로 또 다시 발이 묶였다. 고등학교 시절 샘터에 조리사로서의 꿈과 비전, 희망을 연재하던 걸 눈여겨 보았던 편집자가 출판사를 독립한 후 그에게 ‘푸드 에세이’를 출간하자고 제안을 해온 것이다.

“출판제의는 감사한 일이었지만 특별한 경력도 없고 나이도 스물아홉 밖에 안 되는 저로서는 거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현명하다고 해 요즘은 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어요.”

-왼쪽 귀가 잘 안 들린 것은 언제 부터인가요?

“솔직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고 지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쪽 귀가 안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전화를 왼쪽으로 받았는데 아무 소리가 안 들려 오른쪽으로 받으니까 들려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장애가 조리사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나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전혀 장애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까 약간 불편하기는 해요. 주방 안은 늘 시끄럽기 때문에 상사들의 지시를 못 알아들어 다시 묻곤 하는데 바쁜 상사들이 좋아할 리가 없지요. 그런데 잘 안 들리니까 후각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 같고, 후각이 떨어지다보니 미각도 떨어져요. 어쩌면 손맛을 중시하는 요리보다 정확한 레시피만 지키면 되는 베이커리가 제게 잘 맞는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한쪽 귀가 안 들리는 것에 대해 제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불편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더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장애인 재활기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성남에 있는 소망재활원이나 장애인 재활기관을 방문해보면 몸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가 훨씬 심각하다는 걸 알게 돼요. 대부분 재활원에 있는 그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휠체어 생활하는 그들이 더 행복해 보여요. 오페라 들으면 가슴이 벅찬 것처럼 거짓 가면을 벗어던지고 사는 그들의 삶이 더 나은 게 아닐까요.”

-요즘에는 어떤 곳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약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체질이 다 다르기 때문에 소말리아나 북한 사람도 우리와는 체질이 다를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사람의 체질을 공부하며 그 체질에 맞는 약선음식을 만드는 걸 배우고 있어요. 제 나이가 마흔이 되면 외국의 대학에 진학해 아동심리학이나 미술치료학을 배워서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기아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20대 초반에 나름대로 라이프 플래닝을 짜보았는데, 지금 거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곧 서른의 나이가 되면 청와대에서 일하는 조리사가 되어 국가에 봉사하고 싶어요.”

※집에서 따라해 보는 오보아 셰프의 비법 3제(題)


♠ 양배추 봄 롤


■ 오보아 셰프의 양배추 봄 롤 레시피


양배추(하양), 팽이버섯(하양), 마늘 종(초록), 당근(빨강), 우엉(검정), 달걀노른자 지단(노랑), 간장, 물엿, 소금, 후추, 감초

■ 양배추 봄 롤 만드는 방법


① 감초 물을 우려내어 양배추를 데친 후 찬물로 헹군다.

② 감초 우린 물에 팽이버섯과 채 썬 당근을 살짝 데치고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소금, 후추 간을 해 살짝 볶는다.

③ 다듬은 우엉을 채 썰어 감초 우린 물+간장+물엿에 졸이고, 계란 노른자 지단을 만들어 식힌 후 채 썰어 준비해 둔다.

④ 데친 양배추 잎에 준비해둔 재료들을 차례대로 넣고 말아주면 완성이다.

<단호박 들깨 소스 만들기>

단호박 1/4개, 볶은 들깨가루 1작은술, 꿀 1작은술, 매실 청 1작은술, 식초 1작은술, 우유(농도조절용), 소금과 후추 약간

① 껍질을 제거한 단호박을 쪄서 식힌다.

② 볶은 들깨가루와 단호박+설탕+매실청+식초+우유를 믹서기에 갈아 소금 후추 간을 한다.

Tip: 집에서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음양오행사상에 입각해 오방색으로써 목(木)은 청(靑), 금(金)은 백(白), 화(火)는 적(赤), 수(水)는 흑(黑), 토(土)는 황(黃)에 맞춰 만들 수 있는 레시피다.

뽕잎녹차 견과류 스콘


■ 오보아 셰프의 뽕잎녹차 견과류 스콘 레시피


밀가루 200g, 뽕잎가루 20g, 녹차가루 15g, 황설탕 2작은술, 소금 2g, 베이킹 파우더 3g, 버터 120g, 우유 1/4컵, 밤 넛 호두 해바라기씨 호박씨 약간

뽕잎녹차 견과류 스콘 만드는 방법


① 모든 견과류를 볶거나 오븐에 적당히 구워 식힌다.(호두는 잘게 부수거나 호두 분태를 이용한다.)

② 버터+소금을 중탕으로 녹여 식힌다.(무염버터일시)

③ 밀가루+뽕잎가루+녹차가루+베이킹 파우더를 체 쳐둔다.

④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반죽해 볼에 놓고 마르지 않게 랩 등을 씌어 30분 정도 냉장 휴지한다.

⑤ 밀대로 반죽을 펴 모양 틀로 찍어 팬닝을 한 후 180도 오븐에 25분+- 정도 굽는다.

오미자 젤리 & 매실 젤리


■ 오보아 셰프의 오미자 젤리&매실 젤리 레시피


오미자 청, 매실 청, 물, 판 젤라틴, 각종 제철 과일

■ 오미자 젤리&매실 젤리 만드는 방법


① 판 젤라틴을 얼음물에 불려 놓는다.

② 오미자 청 및 매실 청은 기호에 맞게 물에 희석시켜 약한 불에 끓인다.(팔팔 끓이지 않는다)

③ 액체 100g 당 판 젤라틴 2g(한장분량)을 기본 비율로 하고 선호도에 따라 더 단단한 젤리를 원하면 젤라틴의 비율을 높인다.

④ 냄비에 불려둔 젤라틴을 섞어 완전히 녹인 후 준비해둔 틀에 부어 굳힌다.

⑤ 기호에 따라 과일 등을 넣어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디저트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