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자 4면에 당 정치국 위원·후보위원으로 보선된 박봉주 전 노동당 경공업부장, 현영철 군 총참모장, 김격식 인민무력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의 프로필을 공개했다.
북한에서 김일성 시대에는 함경도 출신이 중앙당 간부로 잘 중용되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은 1945년 평양에 입성해 북조선공산당을 창설할 당시 유력한 국내파 공산주의자였던 함흥 출신 오기섭 등의 견제를 받으면서 함경도 출신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기섭은 1925년께부터 공산주의운동을 시작해 1945년 9월에는 함경북도 공산당 창설위원장을 지냈고 그해 10월에는 북조선공산당 제2비서에 올랐다.
지연을 중시했던 오기섭은 함경도 출신 간부들 속에서 신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1958년 '반당 종파분자'로 낙인돼 숙청됐다.
오기섭 숙청 이후 김 주석은 "함경도 출신들은 지역주의, 종파주의가 심하다"고 자주 강조했으며 이후 노동당은 간부 발탁에서 함경도 출신들을 최대한 배제해왔다.
함경북도 출신 탈북자 최모씨는 "평안도 사람들은 함경도 사람의 기질이 '이전투구(泥田鬪狗)'식이라며 꺼리는 경향이 있다"라며 "하지만 함경도 사람들이 워낙 영악해 김정일 체제에서 고위간부로 출세한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보선된 4명의 인물 외에도 함경도 출신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위원·후보위원은 최영림(함북 경흥), 장성택(함북 청진), 김기남(함남 금야), 김국태(함북 성진), 양형섭(함남 함흥), 현철해(함북 경성), 리명수(함북 명천), 오극렬(함북 온성), 곽범기(함남 리원), 로두철(함남 함흥), 주규창(함남 함주), 조연준(함남 고원), 태종수(함북 명간) 등으로 10여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