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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웰빙 뷔페·파트별 음식으로 10년간 대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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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웰빙 뷔페·파트별 음식으로 10년간 대히트"

[한국의 맛-정수식 동원대 교수]

▲정수식동원대교수
▲정수식동원대교수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서울 프라자호텔,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등 국내 특급호텔에서만 30년간 조리사 생활을 한 뒤 지난 2006년부터 동원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정수식 교수. 수수하고 털털한 그의 성격 덕분에 다른 학교의 외식조리학과에 비해 유난히 교수진의 팀워크가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보다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쳐보기 위해 이민을 꿈꾸었던 그는 조리가 천직임을 발견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특급호텔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각종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애쓰는 정수식 교수를 만났다. <편집자 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부터 인터콘티넨탈호텔에 이르기까지 호텔에서만 30년간 근무하셨는데….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서 6개월간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서울 프라자호텔(1976년~1988년)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1988년~2006년) 두 특급호텔에서 조리사로 근무했어요. 프라자호텔에서 근무할 때 별명이 ‘빗속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재빠르게 일했고, 그런 성실한 모습이 일본 경영진의 눈에 띄었나 봅니다. 덕분에 호텔 직원 600명 가운데 성과급을 가장 많이 받았는가 하면, 일본에서 장기간 연수도 할 수 있었어요. 당시 신라호텔과 힐튼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지만 직장을 옮기려 하면 번번이 책임자들의 만류로 실패했어요. 그래서 88서울올림픽이 열릴 때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직장을 옮겨서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프랑스 요리를 하게 됐어요.”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내에 있는 백조 뷔페를 일약 장안의 유명 장소로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뷔페는 특색이 없이 대부분의 호텔이 비슷했어요. 저는 미국에서 가정의학을 전공한 이상구 박사의 엔돌핀 이야기를 듣고 발상의 전환을 해 요즘 유행하는 웰빙 식단을 백조 뷔페에 도입했어요. 50가지에 달하는 허브샐러드를 선보이고,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섞여 있는 각국 요리를 파트별로 완전히 분리해 디스플레이를 했지요. 그랬더니 하루 20~30명에 불과하던 손님이 2000명으로 불어났어요. 강남의 건강지킴이가 거의 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새로운 세기가 바뀌는 2000년까지 백조 뷔페는 호텔 뷔페로서는 최고의 상종가를 올렸습니다.”

정 교수는 백조 뷔페를 거쳐 프랑스 레스토랑 바론즈와 오리엔탈, 그리고 웨스턴 순으로 돌아가며 근무했다. 조리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팀장에서 총주방장으로 승진했다. 주5일제가 되자 정 교수는 바쁜 토요일과 일요일은 호텔에서 근무하고 평일에는 시간을 내어 경기대에서 외식산업경영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호텔에서 승승장구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하겠다고 목표를 정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린 덕분이지요. 게다가 사물을 볼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요.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집을 나가면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늘 가슴에 되새기며 노력했어요. 나중엔 이 말이 저의 좌우명이 되었고, 힘들 때에는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곱씹었어요. 이렇게 배수진을 치고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제가 하기로 했던 목표를 행해 열심히 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성공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호텔에 입사하기 전 이민을 준비했다면서요.

“1970년 초중반만 해도 남미나 미국으로 이민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보다 넓은 다른 세상으로 나가 ‘한 번 멋지게 살아보자’는 생각에서 이민을 준비했어요. 처음엔 병아리감별사 시험을 준비했지만 연거푸 시험에 떨어져 그 다음에는 바텐더 일을 준비했어요.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만 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 호텔에 들어갔어요. 자격증을 따기 쉬운 바텐더 일을 배우는 도중에 옆의 주방을 보니까 조리사가 요리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가만히 지켜볼 때는 오므라이스 만드는 일이 쉬워 보였는데, 막상 프라이팬을 돌려보니 잘 안 되더라구요. 선배들이 프라이팬에 소금을 얹어 놓고 연습하게 해줘 열심히 하다 보니 프라이팬도 돌릴 수 있게 되고 점차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어요. 1974년도에 3400번째로 서울시 조리사면허증을 취득하고 1994년에는 한식기능사, 2002년에는 복요리기능사, 2003년에는 조리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인터콘티넨탈호텔에 근무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88서울올림픽이 끝날 무렵 조리사로서 두 가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하나는 닭고기를 가지고 통조림을 만드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전통음식인 식혜를 캔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백조 뷔페에서 식혜를 직접 만들어 산업화해보려고 했지만 돈이 없어 지배인의 소개로 투자자를 만났어요. 그런데 투자자가 식혜가 음료수 시장에서 통할까, 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끄는 바람에 한 업체에서 식혜가 상품화되어 나왔어요. 투자를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곧바로 해주었더라면 제가 앞서서 상품화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많이 아쉬움이 남아요. 닭고기 통조림은 외국에서 사람이 먹는 식품이 아니라 강아지 먹이로 나오고 있어서 포기하게 됐어요.”

정 교수는 인터콘티넨탈호텔에 근무하면서 희한한 장면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전국의 조리사들이 앞다투어 그가 만드는 육회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견학을 오게 만든 것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육회는 처음에는 먹음직스러운 붉은 선홍색 빛을 띠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갈변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설탕을 살짝 뿌려 고기를 코팅해 갈변현상을 방지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캥거루 스테이크를 소개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호주에서 캥거루 고기를 수입해와 장사가 잘 된다고 해요. 그 소문을 들은 한 수입업체가 농수산부로부터 3년만에 수입허가를 받았어요. 캥거루 고기는 지방이 적어 몸에는 좋은데 비해 특유의 냄새가 나요. 한방약재로 냄새를 제거하고 캥거루 스테이크와 캥거루 꼬리 찜을 선보였는데, 식도락가들은 호기심에서 한두 번 찾아도 일반 대중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수입이 중단됐어요.”

-일본 무사시노 조리사 전문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셨는지요?

“원래 전공인 프랑스 요리를 심화시키기 위해 1년 간 다녔어요. 일본의 학교인지라 칼 가는 것부터 시작해 일본 요리의 기본을 배우는 동시에 프랑스 요리를 배웠지요.”

-음식과 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음식의 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고 늘 고민했어요.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음식의 맛은 간에서 온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소위 말해 소금(나트륨)이 음식의 맛을 결정하지요. 따라서 음식에서 간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대단히 중요해요. 그런데 나라마다, 사람마다 간에 대한 기준이 없어요.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소금 권장량을 12g으로 규정해 놓고 있지만 실제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먹다보면 권장량을 초과하기 일쑤에요. 물론 세계보건기구의 연구가 틀린 건 아니겠지만 꼭 거기에 얽매이기보다는 조금 짜게 음식을 먹었다면 물을 충분히 마셔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세요?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잘 먹고 잘 사는 게 관건이다.’ 대신에 편식을 해서는 안 되지요. 단백질을 좋아한다고 고기만 먹거나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해 밥이나 빵만 먹게 된다면 몸의 균형이 깨지게 되요. 과일도 마찬가지에요. 따라서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대신 즐겁고 행복하게 먹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조리하는 후배들에게 인성을 강조합니다. 마음가짐이 된 다음에 식품을 만져야 해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꼭 시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지 않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다음에 머리를 곱게 빗은 후 부엌으로 갔듯이 음식은 차분하게, 그리고 곱게 다루어야 해요. 우리 조상들은 정말 음식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만들었어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는 건 자신을 낮추고 차분하게 해주기 때문에 조리를 시작하거나 끝내기 전에는 반드시 인사를 하도록 합니다.”

-조리를 선택하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전국에 조리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조리사들이 그야말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성공할 수 없고 몇몇 정말 요리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만이 성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리를 선택할 때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의에 의해 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해 즐기며 할 수 있어야 해요. 아무리 조리사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음식이 식품이라는 걸 이해해야 해요. 한번 직업을 결정하면 그 일에 몰두해야 해요. 일과의 사랑에 빠져야 하지요. 절대로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에 통달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올인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명예롭게 사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대부분 음식에는 관심이 있어도 식품에는 관심이 부족한 듯합니다.

“음식 이전에 식품을 강조하고 싶어요. 좋은 식품이 있어야 좋은 음식이 만들어지니까요. 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하기도 하지만 조리사가 만드는 재료인 식품을 잘 이해하면 좋은 음식이 나옵니다. 가공된 식품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식품을 사용하고, 이를 이용해 만든 게 조리라고 생각해요.”

※집에서 따라해 보는 정수식 교수의 비법 2제(題)


♠ 스페니쉬 오믈렛


■ 정수식 교수의 스페니쉬 오믈렛 레시피


달걀 3개, 녹인 버터 2작은술, 시즈닝 약간, 양파 100g, 피멘토 50g, 베이컨 50g, 표고버섯 50g, 다진 토마토 200g, 녹색 올리브 50g, 토마토잼 5㎖, 오일 약간

■ 스페니쉬 오믈렛 만드는 방법


양파, 피멘토, 베이컨, 표고버섯, 토마토, 올리브를 5㎜ 정도의 크기로 자른다.

② 달걀은 풀어서 체에 걸러 낸다.

③ 버터는 뜨거운 그릇 위에다 용해시킨 다음 ②의 것에 넣는다.

④ 소테 팬에 버터를 두르고 ①의 재료를 차례로 볶은 다음 토마토잼을 넣어 잘 혼합한다.

⑤ 프라이팬에 버터와 오일을 두르고 최단 시간 내에 오믈렛을 만들어 낸다. ④의 재료들은 오믈렛을 만들 때 속에 집어넣는다.

♠ 감자 크림 스프


■ 정수식 교수의 감자 크림 스프 레시피


감자 100g, 양파 20g, 대파 10g, 버터 10g, 달걀 노른자 1/3개, 크림 15g, 빵 1/4장, 파슬리 1줄기, 소금 약간, 후추 약간

■ 감자 크림 스프 만드는 방법


① 감자는 껍질을 벗겨 얇게 썰고 찬물에 담가둔다.

② 양파와 대파의 흰 부분은 채를 썬다.

③ 빵은 10㎜ 정도 크기로 썰어 팬에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④ 버터를 두르고 양파와 대파를 볶다가 감자를 넣고 색이 나지 않게 볶는다. 물을 넣고 파슬리 줄기를 넣고 뚜껑을 덮어 센 불에서 끓이다가 거품을 제거한 뒤 약 불에서 은근히 끓여준 다음 감자가 푹 익으면 소금과 후추를 넣고 체에 내린다.

⑤ 체에 내린 감자에 크림을 넣어 잠시 끓여 한 김 내보낸 뒤 달걀 노른자를 넣어 농도를 맞추고, 완성그릇에 담고 크루통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