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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유혹한 도박은 영혼 괴롭혔지만 황홀경 맛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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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유혹한 도박은 영혼 괴롭혔지만 황홀경 맛보게 해

김용만의 세계문학기행(9)-도스토예프스키와 극점(極點)의 미학(하)

혁명기 허무주의적 초인사상 역작 『죄와 벌』로 승화


인간심리 묘사의 극치…불멸의 작품 남겨



▲ 러시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철역 모습
[글로벌이코노믹=김용만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18세 때 아버지가 다로보예의 농노들에게 살해당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애정을 베푼 농노들에게 오히려 생명을 빼앗긴 아버지의 참혹한 모습은 감수성이 예민한 그에게 강한 트라우마(외상)로 작용했는데 훗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살인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인물 설정에서 선과 악(신과 악마)의 모순적 성격구조를 파헤치는 주제항으로 작용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물한 살 때 소위로 임관 되어 공병국 제도실에서 근무하며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번역하기도 한다. 스물세 살에 중위로 제대한 그는 처녀작 『가난한 연인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듬해 그 작품을 이미 등단한 친구 그리고로비치에게 읽어주고, 친구는 즉시 네크라소프에게 보이고, 감동을 받은 네크라소프는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고 감탄하며 다음 날 비평계 거물인 벨린스키에게 보임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은 호평을 받게 된다.

중년을 훨씬 넘은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와 불행한 소녀 바르바라와의 사랑을 그린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술가나 도덕주의자의 사랑과 연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를 같이 지은 공범자의 사랑과 연민을 그린 작품이다. 네크라소프가 주간으로 있는 「페테르부르크 문집」에 수록되어 일시에 독서계를 뒤흔들었고, 30년이 지난 후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내 생애에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라고 술회할 만큼 그의 명성을 담보해준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명성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자만에 빠트렸고, 결국에는 동료들의 비난을 사게 되며 벨린스키와도 거리가 멀어진다.

그 무렵 도스토예프스키는 눈이 어두워지고 원고가 밀린 데다 출판업자와 약속한 소설을 제때에 끝내려고 속기사를 고용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가을 어느 날 스무 살 처녀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트키나가 찾아와 속기를 자청하고 다음날 『노름꾼』부터 구술하기 시작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가 작품 얼개를 불러주면 안나는 그걸 기록하고 정리해서 다시 확인시켰다. 그들은 그렇게 협조하면서 정이 깊어졌고, 안나와 한 달쯤 지날 무렵 도스토예프스키는 드디어 청혼하기에 이르렀고, 이듬해 2월 중순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도스토예프스키가 생전에 사용한 책상
결혼하고 두 달 후에 도스토예프스키 부부는 외국으로 떠날 준비를 서두른다. 빚쟁이들과 친척들의 등살에서 자유롭고 싶어 떠난 여행이라 4년간 체류하게 된다. 안나가 앞장서 주선한 계획이었다. 그녀는 보석 등 개인 물품을 저당 잡혀 비용의 일부를 남편 가족에게 주고 떠날 만큼 자상한 여자였다.
맨 먼저 베를린에 도착한 부부는 이틀 후 드레스텐의 젬퍼미술관에 들러 클로드 로랭의 「아시스와 갈라테아가 있는 해안풍경」과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와 한스 주니어의 「그리스도의 주검」을 감상한다. 여기에서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한 도스토예프스키는 특히 로랭의 그림에서 황홀한 이상세계를 느끼고 그 감정을 『악령』에 담는다. 그러는 중에도 도박은 틈틈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유혹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을 놓고 볼 때 도박은 그의 간질병만큼이나 두려운 악마였다. 하지만 도박은 그의 생활을 쪼들리게 하고 그의 영혼을 괴롭혔으면서도 그를 타락시키지는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도취적인 체질에 도박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해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신비스런 존재였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요컨대 도박은 그의 지각능력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광염(狂炎)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것과는 반대로 몸서리쳐지는 허무나 절망의 공포감에 함몰시키기도 했으며, 그의 병적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신비로운 절대고독을 느끼게도 했을 것이다. 절대고독에 빠지지 않고는 아름다움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기에 도박에 취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황홀경을 맞볼 수 없는 것이다. 절대고독이야 말로 황홀경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관문이니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클로드 로랭이나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며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것도 아내 안나와 일궈놓은 평온한 일상을 도박이라는 악마가 뒤흔든 탓이 아니었을까. 딸처럼 젊고 헌신적인 안나와 동행하는 새 인생의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 그래서 일상의 편의주의에 중독되기 십상일 때, 도박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신비성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은 변질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로랭의 「아시스와 갈라테아가 있는 해안풍경」에 취하여 온전히 황홀경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활활 타는 도박의 광염과 그것이 남긴 재의 하얀 공포감에 싸여 있어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1872년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민」지의 편집장을 맡고 정치, 문학, 소설, 일상생활에 관한 글을 「작가일기」에 연재한다. 그는 문단활동에도 참여해 1879년에는 ‘문학기금’을 위한 모금 행사장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일부를 낭독하고, 빅토르 위고의 주재로 열리는 런던 문학회의에 초청을 받는가 하면(건강상 이유로 불참),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박사논문 심사에 참여한 적도 있다. 또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슈킨 동상 제막식에서는 슬라브 자선단체 대표로 임명되고, 제막식에 이은 공개회의에서는 투르게네프와 함께 연설을 했는데, 연설 내용은 대중을 열광시킨 푸슈킨에 대한 추앙이었으며, 그때 받은 월계관을 푸슈킨 동상 앞에 바치기도 한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도스토예프스키는 책상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안나는 남편이 그림을 보며 멍하니 서 있으면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발길을 돌릴 정도로 남편의 정신세계를 존중했다. 그녀는 남편의 도박 빚을 청산하고 생활을 알뜰히 꾸려서 중류 수준의 생활을 영위했으며, 건강관리에서부터 작품 정리까지 남편의 문학인생을 위해 헌신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아내를 무척 사랑했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 아내를 위해 썼으며, 도박으로 집을 날리고 빚을 졌으면서도 죽기 10년 전에는 아내에게 도박을 끊겠다고 약속했다. 안나는 각혈하는 남편이 죽기 2년 전부터는 항상 곁에 붙어 간호할 정도로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죄와 벌』을 쓸 당시에는 러시아에 ‘사회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허용된다’는 허무주의적인 초인사상이 유행했고, 그런 사회 풍조는 중심인물의 성격 구성에 논리성을 제공해준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범인(凡人)과 법을 초월하여 자신이 새로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비범인(非凡人), 즉 ‘모든 것이 허용되는’ 초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 초인은 누가 될 수 있느냐? 인류를 위해 필요한 법을 만들고 직접 법을 가차없이 실행하는 자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나폴레옹을 예로 든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지만 살인자로 매도되지 않고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스스로 법을 만들어 집행할 수 있는 비범인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예심판사인 포르피리에게 한 말이다.

“보다 더 광범위하게 자주성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면 10만 명에 한 사람 정도 나올까 말까 합니다. 그리고 천재적인 인간이라면 100만 명에 한 사람 정도일 거고, 위대한 천재 혹은 인류의 완성자는 몇 세기 동안에 생멸한 몇 조(兆) 명의 인간 중에서 한 명 태어날까 말까 할지 모릅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느 면에서 푸슈킨이나 레르몬토프가 러시아문학에 접목시킨 유럽 문화, 특히 사회적인 정착지가 없이 자기 확인을 위해 살아가는 바이런적 인물(Byronic hero)의 후계자라 할 수 있겠다. 선과 악도 초인의 판단에 달려 있는데 여기에서 초인의 자질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실천할 수 있는 강인성만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초인에게는 범죄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 비범인이 되어 자신의 이념을 실천에 옮기려고 전당포 노파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살인을 통해 과연 자신이 나폴레옹처럼 영웅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추악한 살인자로 전락하는지를 실험하려고 한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천진난만한 백치인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가 살인 현장에 우연히 나타나자 완전범죄를 위해 그녀를 도끼로 찍는다. 그건 파렴치한 살인행위다. 그는 살인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죄책감은 깊어만 간다. 벌레를 죽였노라고 강변할수록 자신이 나폴레옹이 아니라 살인마에 불과하다는 자괴심이 들어 치를 떤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벌레에 불과해…. 만약 내가 벌레가 아니었다면 당신을 찾아올 필요가 없겠지…. 나는 노파를 죽인 걸까? 아니 나는 나 자신을 죽인 거요. 노파가 아뇨. 나 자신을 영원히 짓이긴 거요.”

이처럼 우주적인 진공으로까지 증폭된 고립감은 그에게 법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되었고, 그런 라스콜리니코프를 갱생의 길로 인도한 사람은 지식인이나 종교인이 아닌, 그들로부터 저주와 욕설을 듣는 창녀 소냐였다.

여기에서 소냐란 인물은 신의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앙드레 지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세계를 ‘이지의 세계와 정렬의 세계, 그리고 이지와 정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죄와 벌』에서는 소냐가 바로 미지의 세계인 신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뇌는 창녀 소냐를 통해 종교적인 차원으로 승화된다. 그녀는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는 법이 정한 형벌의 감내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그가 더럽힌 땅과 모든 인류와 인류를 구한 신에게 용서를 빌고 경찰에 자수하라고 설득한다.

“네거리에 나가 모든 사람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입을 맞추세요. 당신은 대지에 대해서도 죄를 범한 거예요. 그리고나서 온 세계에 들리도록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말에요.” 그 네거리가 바로 센나야 광장이다.

『죄와 벌』은 연재될 당시 모스크바의 한 대학생이 유사한 범죄를 일으킬 정도로 폭발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면서도, 신과 양심에 이론적 뒷받침이 거의 없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이 용두사미로 끝나게 된 점을 비난하는 평론가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 묘사에서 극치를 이룬 불멸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60세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한 도스토예프스키는 1881년 1월 28일 숨을 거둔다. 그의 시신은 1월 31일 긴 행렬을 이룬 인파의 애도 속에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에 묻힌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