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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1000조원 시장의 ‘제약전쟁’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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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1000조원 시장의 ‘제약전쟁’치열

제약업계 살길 R&D에 있다…“블루칩 의약품을 만들어라, 고부가가치가 기다린다”


▲ 지난달 23일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제13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제약산업이 국가의 신성장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이코노믹=이승호 기자] ‘1000조원!’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다. 이 글로벌 시장을 놓고 세계 각국이 치열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하지만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한국은 아직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이 변방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1989년 물질특허 도입이후 신약개발 능력을 쌓아온 국내 제약회사들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직 숟가락 정도로 퍼 담고 있다. 대형 포크레인으로 시원스레 퍼 담기 위해서는 ‘제약업계 R&D(연구투자) 확충’에 길이 있다.

다행히 최근 국내 제약회사들이 눈을 세계로 돌리고 있다. 국내 의약시장 규모는 1조7000억 정도로 세계 시장의 1.7%에 불과하다. 1000조 시장 가운데 98.3%가 해외시장으로 이제 국내 제약업체에서도 미국의 ‘화이자’나, 일본의 ‘다께다제약’과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나와야 할 시점이다.

조선,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불리는 제약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부는 지난 6월 18일 동아제약, LG생명과학, 종근당, 한미약품 등 43개 국내 제약회사를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들 기업 가운데 어떤 기업이 글로벌 다국적 제약회사로 치고 나갈지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 글로벌 제약사 탄생 위한 산고 시작

국내 제약업계에게 지난 2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에서 대대적인 ‘약가인하 정책’, ‘보험약가 인하’,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등 정부가 회초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중견 제약사 임원은 “리베이트 쌍벌제로 영업활동이 위축되고, 약가인하로 매출은 지난해 수준이지만, 순이익은 80%까지 감소한 것이 올해 상반기에 받아든 성적표다”며,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마련에 골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보건복지부의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해 일부에서는 “약값을 일괄 인하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제약회사들이 먼저 고사될 수도 있다”는 지적하고 있다.

즉, 약가인하로 매출이 줄어들고,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는 상황에서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고 R&D를 돌볼 겨를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연구개발 중심의 제약산업 재편'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옳은 만큼 '10년 플랜'을 세워 약가도 잡고, 산업육성도 이뤄내는 정책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등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안도걸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정부정책과 관련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은 R&D 투자 및 글로벌 진출 역량이 뛰어난 기업이며, 신약개발 등 향후 3~5년 내에 이룰 수 있는 혁신 역량까지 감안했다”고 밝힌바 있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지금 시작하는 것이 옳으며, 제약업계의 질서개편을 통한 글로벌 제약회사의 탄생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동안 R&D에 주력해온 한 상위제약사 임원은 “정부의 시책으로 영업이익에 막대한 차질을 가져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상위제약사도 마찬가지다”며,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투자 노력이 곧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본 다케다제약은 200년이 넘어서야 세계 10위권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 제약산업은 연구개발의 리스크가 높은 산업이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신약을 1개 개발하는데 1조원 가까이 든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지난 110년 이상 우수인재를 축적해온 국내 제약산업도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고 압축 개발을 하면 5000억원에서 6000억원에도 가능하다는 보고서도 있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세계 7대 제약 강국으로의 성장 및 10개 정도의 글로벌 제약회사 탄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다수의 글로벌 제약회사를 갖는 상황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최소 2~3개의 글로벌 제약회사의 탄생은 가능할 전망이다.

◆ 'R&D가 주는 교훈, 그리고 돌아오는 이익

대대적인 약가인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미약품은 고집스럽게 R&D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2010년만도 매출액 대비 14.3%에 달하는 852억원을 투입했고, 한미의 성장세가 끝났다는 외부의 평가가 나올 정도로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매출액대비 14.4%에 해당하는 740억원을 R&D에 쏟았다.

그 결과, 고혈압 개량신약 아모디핀을 탄생시켰고, 미국 MSD에 수출계약을 맺은 복합개량신약 아모잘탄을 개발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대한민국 제약사에서 오리지널 특허에 도전해 개량신약과 복합 개량신약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최근에는 굴지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GSK 본사와 '복합 개량신약 공동 개발과 판매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맺는 성과를 이뤄내 앞으로 어떤 결과물을 얻어낼지 모르는 상황이다.

LG생명과학도 마찬가지다. 매년 매출의 15~17%, 600~650억 정도를 R&D에 투자해온 LG생명과학이다. 그 결과 최근 혼합 백신 '유포박-히브주'가 세계보건기구(WHO) 품질 인증을 받는 쾌거를 이끌어 냈다.

WHO의 인증 획득에 따라 UN 산하기관인 유엔아동기금(UNICEF), 범미보건기구(PAHO) 이 주관하는 국제 구호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으며, 이에 따라 약 5000억원 규모의 입찰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10% 이상 점유율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1년 의약품산업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제약업계의 영업이익이 10.9%로 다른 제조업평균 6.9%보다 높은 반면 매출액대비 R&D투자비중은 8.2%로 글로벌제약사들의 15.6%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제약사들이 의약품을 팔아 제조업에 비해 이익을 많이 내지만 기술개발 투자는 소홀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미약품이나, LG생명과학처럼 R&D에 노력해온 업체들은 효자종목 보유 효과로 지금처럼 어려운 업계 상황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약으로 15년간 얼마나 챙길 수 있을까. 지식경제부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허가까지 평균 5000억원 이상 투자하고, 신약개발이 성공하면 15년 넘는 기간 동안 투자금액의 6배 가량 순익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했다. 글로벌 업체들은 신약을 갖고 이른바 ‘저비용-고수익(하이리스크-하이리턴)’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제약사 1위 화이자와 국내 제약사 1위 동아제약과 견줘볼 때 R&D 비용이 70배나 차이가 난다.

이와 관련 제약사 한 개발 임원은 “국내사들이 글로벌 업체들과 신약개발에서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막대한 초기 비용 투자”라며, “신약개발을 조기 산업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초기 임상 등 지원을 대폭 늘려주는 동시에 글로벌 규제 당국과의 끊임없는 소통으로 인허가 및 마케팅 정보를 제공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제약사들의 의약품산업의 연구개발비 재원조달은 2010년 현재 자체부담이 90.5%(7820억원)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정부재원은 9.4%(811억원)에 그치고 있다.

또 의약품산업대상 기업체(253개) 연구인력은 2010년 현재 5033명으로 지난 2006년 이후 연평균 6.9% 증가하고 있지만 업체당 평균 연구원 수는 2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가 오는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으로 도약 한다는 목표에 따라 선정된 ‘혁신형 제약기업’들에 얼마만한 지원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