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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에서 슬픈 연민 느끼게 하는 카프카의 秘意에 독자 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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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에서 슬픈 연민 느끼게 하는 카프카의 秘意에 독자 홀려

김용만의 세계문학기행(3)-카프카의 문학세계(하)

'직업' 신에게 바치는 죽음 제물로
비인간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


역사적 배경‧연구 주체의 방법론 따라
실존주의‧형식주의‧리얼리즘 등 다양한 해석


그런 직업의식은 『단식 광대』에서도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굶는 것이 전문인 서커스단의 광대가 동물들에만 쏠려 있는 관중의 관심을 자기에게 되돌리기 위해 몇 달 동안 굶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굶는 일에 충실했다가 짚 쓰레기와 함께 매장되고 만다.

“저는 일년 내내 단식을 해서 여러분들을 놀라게 해주려 했습니다.”

광대가 죽어가면서 감독에게 한 말이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우리 속에서 혼자 외롭게 굶기만 한 광대는 그렇게 “단식 예술”에 희생되는 순교자가 되고 마는데, 직업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카프카 작품의 핵심 주제를 여실히 입증한다.

그의 대표작인 중편소설 『변신』에서는 그레고르 아버지가 직장에서 입고 일했던 은행 사환의 제복을 집에 돌아와서도 입은 채 소파에 누워 자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이 제복을 입는 게 아니라 제복 속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 카프카 기념관 앞의 조형물.단편 『유형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형 집행관인 장교에게 있어 처형장치를 조정하는 일은 바로 그의 신앙행위나 진배없다. 그의 직업에 대한 애착 앞에서는 어떤 인간적인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사형집행제도가 바뀌는 사실을 알고 그 참혹한 처형장치에 직접 누워 자신을 죽인다. 장교는 “자이 게레히트 sei gerecht(본분을 지켜라)”라고 씌어 있는 쪽지를 그의 의도대로 작동되는 제도기 속에 넣어 죄수 대신 자신의 몸을 처형기의 써레로 작살내는데, 그 죽음이야 말로 직업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것이며, 그 제물은 비인간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짜릿한 감동을 느끼게도 한다.
이처럼 잔혹에서 슬픈 연민을 느끼게 하는 카프카 작품의 비의(秘意)에 홀린 독자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이름과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여 회자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며, 셰익스피어나 괴테이래 지금까지 세계의 문예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텍스트로 다뤄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문예비평가 한스 마이어가 <카프카, 정녕 끝이 없는 것일까?> 라는 논문을 썼듯이 상징, 비유, 병치, 풍자, 위트, 패러독스 등 카프카의 언어유희 장치로 교직된 모든 작품의 비의적인 난해성, 다의성, 부조리 등은 역사적 배경이나 연구 주체의 방법론에 따라, 실존주의 시각으로, 형식주의 시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으로, 실증주의 시각으로, 카발라 세계의 시각으로, 리얼리즘 시각으로, 환상문학 시각으로, 초현실주의 시각으로, 정신분석적 시각으로 그 관점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카프카는 꿈과 잠과 명상을 통해서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전환되려는 비몽사몽 중에 작품의 착상이 떠오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독자 역시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낯선 정신세계와 비인간적인 현실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요컨대 초현실적인 세계와 사실세계, 환상적인 세계와 일상적인 세계, 현실세계와 꿈의 세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상황이 발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착각 속에 빠진다는 말이다. 더구나 카프카는 신비한 세계를 다루면서 아주 능청스런 사실적인 묘사로 상황을 객관화 시킨다. 예를 들어 『사냥꾼 그라쿠스』에서는 산자와 죽은자와 비둘기의 위치가 너무 자연스럽다.

“당신(죽은 사냥꾼)이 온다는 말을 간밤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한참 자고 있었지요. 그때가 자정쯤이었는데 아내가 살바토레, 하고 내 이름을 부르더니 ‘창가에 있는 비둘기를 좀 보세요!’ 하더군요. 그건 분명 비둘기였는데 수탉만큼이나 컸습니다. 그 비둘기가 내 귓전으로 날아와 ‘내일 죽은 그라쿠스가 올 테니 그를 시(市)의 이름으로 맞이하시오’ 라고 했습니다.”

(죽어 들것에 누워 있는) 사냥꾼이 고개를 끄덕이고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그렇습니다. 비둘기가 나보다 앞서 날아갔지요. 그런데 시장님, 내가 리바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카프카 작품의 특색은 작품마다의 형식이나 인물이 작품의 문맥에 따라서 기능이 다양하게 변화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 “형식이나 인물을 일률적으로 동일 선상에 놓고 규격화하는 것은 위험하다.”(엠리히의 <카프카론>) 그의 모든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은 그의 독특한 비유 세계나 언어의 독특한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변신』에서는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레고르는 가정의 선량한 아들이며 회사에서는 모범적인 세일즈맨이었다. 그는 가정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존재였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빨리 부모의 부채를 갚고 퇴직해서 자기가 원하는 생활을 갖고 싶어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망 때문에 ‘소속’에서 추방되어 벌레가 된 것이다.

▲ 카프카가 생전에 획득한 각종 자격증들장편소설 『소송』에서도 주인공 요제프 K가 서른 살 되는 날 아침, 자고 난 하숙집 침실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낯선 두 사나이에 의해 체포된다. K는 아무 죄도 없거니와 그가 찾아간 법원도 초라한 임대주택의 다락방인 데다, 합법적인 재판이나 판결도 없이 처형당한다. 여기에서 죄, 법, 법정은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와의 파혼으로 입게 된 죄의식이 모티브로 작용했는데, 카프카는 일기에서 파혼 장소인 베를린의 아스카니셔 호텔을 ‘법정’ 혹은 ‘법원’으로 표시했고, 자기 자신을 ‘범죄자’로 기술했던 것이다. 카프카는 언제나 ‘상처’를 ‘형벌’과 ‘상징’으로 보았다.

이 소설에서 카프카는 자신의 체험(파혼)을 초월적인 차원, 즉 그 ‘알 수 없는’ 법이나 법정의 차원으로 심화시키는데, 미완성 작품인 『소송』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와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함께 20세기 독일어권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카프카 작품의 신비성과 난해성은 낯설게 하기 식의 표현법과 같은데, 그 낯설음은 카프카의 반역정신에서 싹이 텄다고 볼 수 있다. 카프가의 작품들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일상의 이치나 습관이 거의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세계다.

클라우스 바겐바하가 쓴 『카프카』에는 그런 세계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실려 있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들은 여기에서 인간 사고의 한계에 다다른다. 정말, 이 작품에 있는 모든 것은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본질적이다. 어쨌든 이것은 모순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으면서 어떤 것도 확증해주지 않는 것은 운명이며 아마도 이 작품의 위대성이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위대한 혁명의 예감이 창조적으로 표현되는 저 영혼들 가운데 카프카의 이름도 역시 영원히 불려지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로베르트 무질은 “카프카의 단편 속에는 선을 향한 원초적인 충동, 증오가 아니라 선에 대한 유년시절의 억압된 정열의 그 어떤 것이 표현되어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나는 이 작가의 글에서 가장 고유한 방식으로 나와 관계되어 있지 않거나 놀라지 않았던 글은 결코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다.”

토마스 만은 “그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자주 꿈의 성격 속에서 완전히 구상되고 형상화 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이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 냄으로써, 생의 이 기괴한 그림자놀이를 비웃고 있다.”

밀레나 예젠스카는 “그는 너무도 세심한 양심을 지닌 인간이자 예술가였으므로 다른 사람들, 즉 귀머거리들이 이미 안전을 느끼는 그곳에서도 역시 방심하지 않고 남아 있다.” 라고 칭송했다.

▲ 프라하 성 정상1907년 『시골에서의 혼례 준비』를 쓰기 시작한 카프카는 이듬해 휘페리온 지에 처음으로 8편의 산문을 발표한다. 1910년부터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이듬해에는 유대인 극단원 이차크 뢰비를 만나 우의를 다지는가 하면, 브로트와 함께 북부 이탈리아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며 창작의 지반을 다진다. 차츰 필력이 붙은 그는 1912년 한 해 동안에만 장편소설 『실종자』를 구상하고, 첫번째 작품집 『관찰』을 출판하고, 단편 『선고』를 발표하고, 중편 『변신』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브로트와 함께 바이마르와 융보른을 여행하고, 브로트 집에서 펠리체 바우어를 처음 만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프라하에서 최초로 『선고』의 공개 낭독회를 갖는다.

카프카는 폐결핵으로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빈 교외의 키를링 요양소에서 요양 중 1924년 6월 3일 눈을 감은 카프카는 6월 11일 프라하의 슈트라슈니츠 묘지에 묻힌다. 그의 무덤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밀란 쿤테라의 고향인 브르노(Brno)로 떠나야 하는 일정 때문에 그냥 지나치게 되어 아직도 아쉽기만 하다. 나는 무덤을 찾아가 이렇게 묻고 싶었다.

“카프카 씨, 당신은 무덤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어떤 처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보험회사 업무보다 소설쓰기에 더 미쳐 지낸 그 무거운 죄 때문에 지금도 엄청 시달리겠죠? ‘소속’을 일탈한 죄의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잘 아시면서, 회사 일만 잘할 게지 왜 소설을 탐했나요?”

▲ 카프카 문학기념관 앞 광장에 작가 카프카를 상징하는 문자 K가 있다.카프카의 세계에 있어 직업이야말로 현대인간의 유일한 존재형태였다. 현대 인간에게 직업은 신이다. 어떤 식으로 자기 직업을 신앙하느냐, 하는 그 절대복무가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다. 카프카는 그 절대복무의 층위도 형상화했는데, 그 작품들은 감동의 단계를 넘어 가슴을 찢는 통증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