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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신의 경제포커스] 한국경제 유동성 함정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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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신의 경제포커스] 한국경제 유동성 함정 빠지나


[글로벌이코노믹=송계신부국장] 한국은행이 금리인하와 국공채 매입 등 자본시장에 돈을 투입하고 있으나 정작 돈이 돌지 않아 한국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본원통화의 통화창출력을 의미하는 통화승수가 최근 10년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고 증시에서 거래대금은 반토막으로 줄었다.

반면에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머니마켓펀드(MMF) 등 증시 주변의 단기자금은 40% 가까이 급증하는 등 돈이 돌지 않고 단기 부동화 되는 현상이 극심해졌다.

#돈이 돌지 않고 고여 있다

-통화승수 22.2로 2000년대 들어 최저수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4.0포인트 낮아

-예금은행 예금회전율 5월 기준 4.0회 기록

한국은행이 지난주 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하면서 경기부양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으나 정작 자금이 돌지 않아 금리 인하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화정책 당국인 한은이 금리인하와 국공채 매입 등을 통해 자본시장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광의통화(M2)에서 본원통화를 나눈 통화승수는 지난 5월 22.2로 2000년대 들어 최저수준으로 추락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전 세계가 정책공조를 통해 금융위기를 타개할 당시의 통화승수 26.2와 비교해 4.0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통화승수는 2008년을 고비로 2009년 24.4, 2010년 24.3, 2011년 22.7로 해마다 하향 추세를 보이는 등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통화승수는 금융회사들이 한은으로부터 공급받은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대출 등을 통해 시중에 공급한 통화량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다. 통화승수가 낮으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만큼 돈이 도는 속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본원통화가 늘면 시중은행 대출 증가→통화량 확대, 금리 하락→소비·투자 진작 등의 과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책 목표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본원통화는 보통 한국은행의 화폐 발행물량과 지급준비금을 합한 것이다. M2는 민간보유현금, 은행 요구불예금, 은행 저축예금, 수시입출식예금(MMDA), 투신사 머니마켓펀드(MMF),정기 예적금 및 부금, 거주자외화예금, 시장형 금융상품, 실적배당형 금융상품, 금융채, 발행어음, 신탁형 증권저축 등 합친 것으로 시중 통화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대량으로 돈이 풀려 유동성은 풍부함에도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으로 투자되지 못한 채 돈이 돌지 않는 ‘풍요 속 빈곤’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은 예금회전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기관의 예금지급액을 평균 예치잔액으로 나눈 예금은행 예금회전율은 지난 5월 기준으로 4.0회를 기록했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8년 8월 수준과 같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예금회전율은 잠시 높아지며 2009년 12월에 5.1회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3.9회까지 급락하는 등 회전율이 다시 크게 떨어졌다.

자유롭게 입출금하는 요구불예금의 회전율도 작년 36.7회에서 5월 32.8회로 크게 낮아졌다.

예금회전율은 예금의 월중 지급액을 예금통화의 평균 잔액으로 나눈 값이다. 시중 유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예금에서 빼가는 돈이 적어 시중의 자금사정이 빡빡하다는 의미다.

이는 막대한 돈이 풀렸음에도 기업투자 감소,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둔화, 은행 대출 기피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적완화로 공급된 대부분 자금은 지급준비금 확충이나 단기예금 재예치 등으로 중앙은행으로 다시 몰리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더 심화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자금시장에서 유동성 함정이 나타나면 통화 공급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을 낮추면 자금수요가 증가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금리를 내려도 자금수요가 늘지 않는 어느 시점에 도달하게 되고 자금이 부동화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자금 수요를 늘리기 위해 극단적으로 금리를 낮추더라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채권에 대한 투자도 멈추고 아예 현금자산으로 보유하게 되는 이 현상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한다.

#자금 단기부동화 가속화

-MMF 설정액 73조원, 연초대비 40% 급증

-증시거래대금 5년4개월 만에 4조원 밑돌아

-3%대 정기예금 금리에도 증시보다 예금선호


대량으로 풀린 된이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머니마켓펀드(MMF) 등 증시 주변의 단기자금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자금 부동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MMF 설정액은 작년 말 53조1,267억원에서 지난 11일 현재 72조9,345억원으로 7개월만에 40% 가까이 급증했다.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증시주변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으로 돈이 모이지도 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투식 등 위험자산 투자를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지난 1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3조8,000억원으로 4조원을 밑돌았다. 거래대금이 4조원을 밑돈 것은 2007년 3월 이래로 5년4개월 만에 처음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고 볼 수 있다.

주식에 투자하려고 증권사에 맡겨놓은 돈인 고객예탁금은 올해 1월말 20조원을 웃돌았으나 지난 11일 기준으로 16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량이 줄고 단기자금 쪽으로 돈이 몰렸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당분간 주식보다는 채권에 투자하거나 그냥 단기자금으로 보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1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증시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코스피 지수가 주가수익비율(PER) 8배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로 주식투자 매력이 커졌음에도 단기간에 주변 자금이 다시 증시로 회귀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유로존 금융위기와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데다 미국의 재정정책의 효과가 갑자기 줄어드는 ‘재정 벼랑' 우려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 ‘풍요 속 빈곤’

-올해 들어 글로벌 유동성 3,000조원 증가

-세계각국 통화당국 강력하게 유동성 공급

-대공황 때의 유동성함정과 거품 경계해야


세계 각국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고 있으나 글로벌 금융시장도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동성 증가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침체된 글로벌 경기를 회복시킬 여력을 마련했으나 통화를 공급해도 수요가 증가하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 통화당국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자금을 대량으로 풀었으나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풀리면 가계는 소비를 늘리고 기업이 투자를 늘려 총수요가 증가하고 경기 회복을 촉진할 수 있지만 문제는 돈을 푼다고 무조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동성 함정을 걱정하는 것은 돈의 힘만으로 자산가치가 높아져 고평가될 경우 유동성 공급이 멈추면 언제든지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올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은 3,00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초 금리를 인하해 유동성 공급을 위한 문을 열었다. ECB는 지난해 12월부터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실행해 유로존 523개 은행에 4890억유로(약 737조원)를 풀었으며 지난 2월에도 2차 LTRO로 5295억유로를 유럽 내 800개 은행에 방출했다.

영국 영란은행(BOE)은 지난 3월 500억파운드를 시장에 풀기로 했고 7월에도 추가 자금방출을 결정했다. 일본은행(BOJ) 역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을 풀면서 양적완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강력한 금리인하 정책과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이 돈을 풀고 있지만 유동성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한 8~9월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유동성이 산업자본으로 전환돼 실물경제를 살릴 가능성이 있지만 풀린 돈이 투기성 자금으로 변질되면 자산 거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단순히 금리만 내리기보다는 금리인하가 총수요 증가로 이어지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해 유동성 함정을 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