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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민영화의 운명...강만수 VS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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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민영화의 운명...강만수 VS 국회

[글로벌이코노믹=김재현기자]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이끌 수 있는 ‘구원투수’로 등판한지 1년이 지났다.

강 회장은 3년의 임기기간 내 산은지주의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였다. 정부 역시 ‘메가뱅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특혜’논란의 방패막이 되어줬다.
이제 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단초가 되는 기업공개(IPO)의 운명은 오는 6월 임시국회의 동의 여부에 따라 결정짓게 됐다.

강 회장이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야당은 과거 산은의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기업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몸값’도 문제다.

일각에서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이 안되는 가격에 파는 것은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장에서도 KDB금융이 상장하더라도 PBR이 1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암운’속에서도 정부와 산은이‘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의 변화에 산은의 정체성에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 산업은행의 정체성 위기

외환위기 이후 금융의 대형화, 겸업화 등에 의해 4대 시중은행의 자산규모가 확대되면서 자산 규모나 기초 인프라에서 산업은행의 지위가 바뀌기 시작했다.

1999년 말까지 자산 규모 국내 1위였던 산업은행은 시중은행들이 생존을 위해 합병과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리면서 2007년 9월 말 기준 국내 5위로 하락했다. 점포와 임직원 수 등 기본적인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열세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체질이 개선되자 그동안 기업금융 확대와 외화자금을 조달하며 기업구조조정의 역할을 맡았던 산업은행은 민간금융기관과 충돌했다.

산은은 기업들의 시설자금 수요가 줄어들면서 시중은행들과 공급이 가능한 운영자금 확대에 나섰다. 시중은행들도 공급이 가능한 운영자금 대출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산은은 금융지주회사로 방향을 선회하고 대우증권과 옛 서울투자신탁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민간영역인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방카슈랑스 등 수익성 사업을 확대했다.

시중은행들은“정부의 출자와 지급보증·손실보전까지 받는 국책은행이 수익성 위주의 사업을 하게 되면 시장왜곡 현상이 발생될 수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같은 업무 중첩 문제는 산은이 의도적으로 침범했기보다 SOC건설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성장동력 벤처투자 등 선도적으로 개척한 분야에 민간금융기관의 진출이 확대되면서 발생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생존을 위해 자체 수익기반을 재조정한 것 자체로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산은의 정책금융 업무가 최근 전체 업무의 5% 이하로 줄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 정부와 산은의 ‘민영화’ 합작품

강 회장은 민영화의 성공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강한 메세지를 수차례 보여줬다.

강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올 한해 ‘아시아의 파이오니어 뱅크’로 도약하자”면서 “민영화 추진과 함께 글로벌 성장기반을 확대하겠다”며 공언했다.

강 회장의 의지는 곧바로 행동에 이어졌다.

우선 강 회장은 임기동안 산은지주의 민영화를 위해 수신기반 확대에 나섰다.

이를 위해 HSBC 서울지점 인수와 ‘KDB 다이렉트 뱅킹(Direct Banking)', '발렛 파킹 서비스(Valet Parking)', 카드사업 진출에도 눈독을 들였다.

이처럼 강 회장이 개인대출 비중을 늘리는 이유는 수신기반을 확대해 민영화에 차질을 빚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회정무위원회는 산은금융지주 매각과 관련해 점포수가 적고 성장기반 확충이 미흡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에 산업은행 지분 매각 계획도 2013년에서 2014년으로 전격 연기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강만수 회장이 개인 수신기반을 늘리는 것은 그만큼 민영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기업대출보다는 개인 수신에 더 초점을 둘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민영화’ 작업에 발 벗고 나섰다.

물심양면 산은을 지원하는 것은 정부가 한은법에 의거, 민영화로 마련된 재원을 산은에서 분리된 한국정책금융공사로 쏟아붓기 위함이다. 더불어 '몸값'을 부풀려서 제값을 받아야 여론의 질타를 피할 수 있다.

최근 산은금융지주와 산업은행,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에서 제외됐다. 민간 금융기관과 동등한 경쟁을 위해 공공기간 지정제외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이들에게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로써 이들 기관은 인력과 예산운용 등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그룹과 기업은행은 독과점 사업을 영위하는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무한경쟁 중”이라며 “공공기관에서 제외해 민간금융사와 동등한 경쟁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현 정부의 실세인 강 회장에 대한 특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율성 확대가 방만 경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올해 정부예산에 반영된 산은, 기은 지분매각 촉진을 위해 정부의 민영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공’은 국회로

지난 15일 주우식 신임 산은금융지주 수석부사장은 취임기념 오찬간담회를 통해 “산은의 연내 IPO를 위해 6월 국회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IPO가 민영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대외적으로 공언한 연내 IPO가 어려워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신용등급 하락과 채권가격 급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산은의 설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IPO를 하면 정부가 아닌 민간 지분이 생기기 때문에 정부를 믿고 투자한 해외 투자자 보유채권(만기 1년 이상 남은 채권)에 대한 정부 보증이 필요하다.

주 수석부사장은 “산은법상 2014년 5월까지 지분 매각을 시작해야하는데 IPO가 가장 일반적이고 유연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국회동의 절차만 끝나면 대외 채무 채권자 동의 획득, 상장예비심사 청구서 제출(8~9월), 유가증권신고서 제출(9월) 등을 거쳐 오는 10월쯤 상장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산은은 지분 10% 이상을 판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 수석부사장은 “지분 10%를 매각할 때 주가순자산비율(PBR) 1로 가정하면 약 2조원 가량을 받게 된다”며 “시장 여건과 상황에 따 가치평가는 달라지겠지만 현재 해외 투자자들의 호응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이같은 산은의 기대와 달리 ‘민영화’에 대한 분위기는 냉랭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산업은행은 고유 업무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국내 개인금융 시장은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국책은행마저 민영화된다면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이익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당도 국회 동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총선 공약으로 이명박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산은 민영화는 일단 중지해야 한다”며 “위기 시 정책금융이 강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기로 방침을 정했다”말했다.

여기에 산은의 기대처럼 PBR 1을 받기도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