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1: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주인공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는 장면. 밥이 상한 줄 모르고 한입 넣었다가 다시 뱉는 주인공. 그 모습엔, 힘든 삶을 억척스럽게, '살기 위해 먹는' 서러움이 잘 드러난다. 언젠가 어머니가 중한 병으로 입원하셨을 때, '금식'인데 어떤 착오로 환자식이 나왔다. 음식을 버릴 수도 없어 먹게 되었는데, 그 한술 밥의 감촉은 참 꺼끌꺼끌했다. 어머니는 어찌 될지 모르는데. 그 옆에서 살겠다고 꾸역꾸역 먹던 내 모습…. 정말이지 사람이 살기 위해 먹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장면2: 고향의 고모가 차려주신 음식을 먹는 주인공의 모습. "천천히 먹어라"고 연신 등을 두드려주며 걱정하는 고모와 게걸들린 듯 허겁지겁 먹는 주인공. 이 장면의 주인공은 오로지 '먹기 위해 사는' 듯한 삶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진짜 배고파서…" 하고 계면쩍게 웃는 주인공. 나 역시 한 끼만 굶어도 온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가. 이와 대조적인 아이러니는 배가 부른데도 깃털로 목을 간지럽게 해 토해가면서 먹었다는 로마 귀족의 음식문화, 그리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성어나, 곱창마차, 타이타닉주, 먹토, 맛캉스 등의 한글 신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면3: 텃밭에서 얼어있는 배추와 파를 뽑아 배춧국을 끓여 먹는 주인공의 모습.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상한 편의점 도시락도 아니다. 고모가 지어주신 맛깔난 성찬도 아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끓인 배춧국. 주인공의 먹는 모습과 다 먹은 다음의 포근한 모습은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니고, '먹기 위해 사는' 모습도 아니다. 그야말로 '먹고 사는' 담담하고 진솔한 모습이다. 우리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바로 '먹고 산다' 아니던가? '먹는 게 사는 거, 사는 게 먹는 거.' 오늘을 사는 우리네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어 줄지어 등장하는 칼국수와 배추전, 삼색 시루떡, 오이콩국수, 막걸리, 크렘 브륄레, 감자 빵…. 모두가 살 맛 나게 하는, 먹을 맛이 가득한 먹을거리다.
그렇다면 사람이 '삶을 산다'는 것과 '먹을거리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관계일까. 바로 '윈-윈'의 관계 아닐까?.그렇다. 좋은 삶은 먹을거리를 먹을 맛이 나게 하고, 좋은 음식은 삶을 살 맛나게 한다. 먹을 맛 안 나게 하는 삶도, 살 맛 안 나게 하는 먹을거리도 바람직하지 않다. 삶의 윤리처럼 음식윤리도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살 맛 나게 하는 먹을거리를 먹는 것이 음식윤리에 걸맞은 삶이다. 반대로 살 맛 안 나게 하는 먹을거리를 먹는 것은 음식윤리를 거스르는 삶이다. 이런! 두서없이 떠들다보니 맑은 작품에 흠을 내는 건 아닐까. 맛깔난 냉면에 괜히 식초를 더 넣는 것처럼. 리틀 포레스트, 참 좋은 영화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