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CERCG의 크로스 디폴트 이후 투자 증권사끼리의 법적분쟁 확대
약 1650억원의 거금을 날릴 처지인데 책임을 지는 곳은 없다.' 중국에너지기업 ABCP 디폴트 채권 사태는 이렇게 요약된다.
발단은 증권사들이 투자한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디폴트다. 이 ABCP의 기초자산은 중국 에너지기업인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 CERCG캐피털이 발행한 회사채다.
하지만 이 ABCP는 벼랑 끝에 몰린 처지다. 지난 5월 CERCG캐피털의 채권에 크로스 디폴트(Cross Default.동반부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CERCG 지급보증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금정제12차㈜의 ABCP도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투자한 증권사들도 투자금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ABCP에 투자한 증권사는 5곳이다. 현대차증권이 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BNK투자증권과 KB증권 200억원, 유안타증권 150억원, 신영증권은 100억원을 보유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CERCG의 크로스 디폴트 이후 ABCP 투자 증권사 사이의 법적 분쟁이다.
바로 유안타, 신영증권과 현대차증권 사이의 소송전이다.
유안타, 신영증권은 각 지난 달 6일과 23일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ABCP 매매 이행에 관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금정 제12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액면금액(유안타증권 150억원, 신영증권 100억원)에 대한 매매 계약 이행을 청구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증권사들 모두 현대차증권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현대차증권이 ABCP를 매수하기로 했으나 ABCP 기초자산의 채무 불이행 위험이 커지자 현대차증권이 매수 결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요지다.
현대차증권의 매수주문 증빙 등이 담긴 법무법인의 검토 의견서를 제시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이행을 촉구했지만 현대차증권은 거래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혀 법적소송을 제기했다는 게 주요한 설명이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금융시스템은 신용이 생명”이라며 “이번 현대차증권의 매매계약 결제 불이행 건은 신의성실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금융 시장의 관례를 깨는 것은 물론 자본시장 질서를 흔드는 심각한 모럴 헤저드 행위라고 생각하여 불가피하게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 주관사 아니라 자산관리자, 법적으로 다퉈도 승소 가능성
현대차증권도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메신저, 유선전화, 휴대폰 등을 통한 사적인 협의일뿐 채권중개 공식채널인 K-Bond를 통하지 않아 유효하고 적법한 매매계약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채권중개는 사전에 메신저, 전화 등 사적으로 합의가 되면 K-Bond를 통해 금액이 거래되고 매매가 확정이 되는 두 단계를 거친다”며 “첫번째 사적인 단계에서 벌어진 협의이기 때문에 충분히 법적으로 다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특수목적회사(SPC) ‘금정제12차’를 통해 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한 한화투자증권이 법적공방에 휘말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관사가 아니라 자산관리자의 역할만 수행했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사모 ABCP라 주관계약을 맺은 자체가 없다”며 “정확하게 역할은 자산관리자로 구조화(유동화)에 한정됐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 논란에 대해서도 한화투자증권은 “회사채 등 주관이나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한 것이 아니다. 자체적 리스크 심사능력을 갖춘 전문투자자 간 거래로 불완전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독원도 이번 중국 ABCP 투자가 전문투자자 간 거래로 개인에게 적용하는 불완전판매 잣대를 기관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인이 아니라 전문투자자인 기관끼리 거래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투자에 따른 위험 감수능력인 있는 투자자에 대해 금감원이 개입해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딜의 최후의 승자는 한화투자증권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대규모 부실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화투자증권은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이 처음부터 투자대상을 잘 분석했으면 투자 증권사끼리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아무 피해를 보지 않고 수수료도 벌었다는 점에서 한화투자증권이 최종승자”라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수수료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며 “사태가 빨리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bad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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