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47)]
이미지 확대보기1999년 농로(農路)를 개설하면서 대흥리 유적과 함께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1기의 덮개돌과 덮개돌 주변의 땅속에서 4기의 석관묘, 장방형의 유구(遺構) 및 구(溝), 석열(石列) 등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조사에서는 덮개돌과 석관(石棺)의 관계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아 덮개돌이 후대에 이동하였을 가능성도 지적되며, 지석(支石)의 유무도 확인되지 않았다. 매장 주체부가 판석조의 ‘ㅍ’자 형태의 석관으로서 바닥석이 깔린 상태였으며, 일단병식(一段炳式) 돌검과 촉신이 긴 돌살촉 등 출토 유물의 형태로 보아 유적의 편년은 청동기시대 중기로 추정된다.
봉평리 고인돌은 발굴 조사 전부터 이미 덮개돌이 둘로 갈라져 틈이 벌어져 있었는데, 훼손되지 않는 덮개돌의 북면에는 지름 10㎝ 정도의 성혈(姓穴‧바위구멍) 1개가 확인되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165㎝, 너비 148㎝, 높이 235㎝ 정도이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